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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Dec 03. 2023

홋카이도 설국 여행 1.

드디어 출발 그리고 도착.

 부산에서 비행기로 3시간, 지겨워질때즘 도착하는 홋카이도까지 거리다.

가만히 못 있고 힘들어할 줄 알았던 아이들 표정이 내내 밝아 다행이었다.

제주도 가면서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창가 자리를 두고 옥신각신하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협상을 마쳤다며 착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 참 이뻐 보였다.


"나는 올라갈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비행기가 날아갈 때는 소리가 안나는 줄 알았는데 소리가 심하게 나서 고막이 터질 것 같았는데 다행히 고막이 안 터졌다."_7살 딸

"나는 오늘 처음은 아니지만 거진 처음 탔다. 올라가면서 우주까지 갈 거 같았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고 비행기를 탔다."_11살 아들


처음 비행기를 탈 때 아이들이 남긴 소감인데 아이들은 정말이지 순수 그 자체다.


신치토세 공항.

드디어 가족이 함께하는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준비를 했기 때문에 일본 현지인보다 홋카이도를 더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일본어를 할 수 없어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보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장소가 그대로 있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이 커서 얼른 입국장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공항에서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한국에서 예약했던 레일 프리 패스와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이다. 

레일 프리 패스만 있으면 일정동안 기차를 얼마든지 탈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한국에서 구매한 '홋카이도 레일 프리패스 5일권' 쿠폰을 공항안내소(information)에서 티켓으로 교환하면 된다. 프리패스는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쿠폰만 보여주면 직원이 알아서 처리해 준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서 이동수단과 방법을 꼼꼼하게 따져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홋카이도 설국 여행은 기차로 이동하는 것이 운치 있고 편한데 무엇보다 눈 많은 곳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레일 프리 패스는 3,5,7일권이 있다.

다음으로 기차표 예매를 했다.

구시로라는 곳에서 증기기차 타는 체험을 할 예정인데 공항안내소에서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예약에 필요한 정보(날짜, 시간, 인원수)를 종이에 적어서 주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


공항에서 무난하게 업무를 마치고 목적지인 오타루에 가기 위해 삿포로 기차역으로 갔다.

하지만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았다.

'JR 쾌속 에어 포트'를 타야 하는데 전부 일본어로만 되어 있어서 플랫폼을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최소한 영어가 있는데 여기는 일본어만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떤 기차를 타야 하나?'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마치 우리 가족에게만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빠르게 다니는 인파들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멈춰 버렸다.


"오타루!"

제복 차림을 한 역무원에게 가서 다짜고짜 소리다. 

지금 생각하면 '스미마생^^' 정도는 먼저 말할 걸 그랬다. 당황한 나머지 기본적인 인사를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티켓을 확인하더니 손가락으로 건너편 기차를 가리켰다. 이렇게 쉬운데 괜한 걱정을 했다. ㅋㅋ..

모를 때는 물어보면 된다. ㅎㅎ


기차가 지상으로 나오자 건물에 걸린 광고판들이 스쳐 지나간다.

'드디어 삿포로에 왔구나!' 

그제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온 세상을 덮어버린 홋카이도의 백설은 세상을 고요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기차는 도시에서 점점 멀어지는가 싶더니 한산한 시골 풍경이 나타났다. 

상상 속 그렸던 그림 같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 건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설국을 지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데...


달리는 기차와 함께 머릿속에서 시상이 막~ 지나가듯 맴돌기만 하는 감성들 중 하나라도 놓일세라 얼른 펜과 메모지를 꺼냈다.


'아..... 좋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이 순간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공대 졸업 후 십수 년을 차가운 기계와 함께 지내온 나. 

뼛속까지 기계쟁이가 되어 있었나 보다.

머릿속을 괴롭히던 복잡하고 미묘한 사춘기 순수했던 감성들은 아무래도 자취를 감췄나 보다.

홋카이도 여행 중 이런 순간이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올 텐데...

돌아가면 책 좀 읽어야겠다.ㅠㅠ


출발한 지 40분쯤 지나 오타루에 도착했다.

오타루 기차역을 빠져나왔을 때 첫인상은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읍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앙증맞고 귀여운 신호등이었는데 보행 신호 시간도 생각보다 길었다. 사람들 발걸음에 여유가 있고, 얼른 건너라는 끼룩끼룩 대는 갈매기 소리도 참 정겹게 들렸다.

대체 눈이 얼마나 내린 걸까?

키만큼 높 쌓여버린 눈은 치우는 것조차 포기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좋아서 벌써부터 눈싸움을 시작했다.

첫날 숙소를 오타루로 정한 것은 오타루 운하 야경을 제일 먼저 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호텔도 오타루 운하 근처로 잡았다.


여행 첫날부터 족들을 굶길 뻔한 사건이 벌어졌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검색해 온 맛집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두 팔로 X자 표시를 했는데 누가 봐도 장사 끝났다는 표현이 분명했다.

한 두 집 정도야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몇 집 더 가봤지만 장사 끝났다는 표현을 했다.


시간을 보니 저녁 7시였다.

그러고 보니 길에는 사람도 없고, 문 닫힌 식당도 제법 있다.

아이들 걸음도 느려지기 시작했고 이러다 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아침밥을 먹은 게 다였다.


안에서 시끌벅적한 치킨집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 사람들이 꽉 찬 걸로 봐서 장사를 오래 할 것 같아 보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을지 모르는 세월이 묻어있던 낡은 미닫이 문 힘차게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소한 후라이드 냄새가 코 속으로 쑤욱~ 들어온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날아든 후라이드 냄새가 어서 오라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을까? 


'배고파 미치겠다, 제발 장사 좀 합시다~'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주인장을 애틋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얄밉게 웃으며 X 자를 날린다. 

'너희들이 아무리 불상한 표정을 해도 소용없어' 하는 것 같았다.

일본 사람들이 융통성이 없다는데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빈 테이블 없이 손님이 가득한데 왜 장사를 안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배가 하도 고파 이해할 힘조차 바닥났다.

말이 통했다면 어떻게든 했을 텐데... 표정과 행동으로 배고픔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걸까?


"저기요~"

식당을 나서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일본에 와서 처음 들어본 한국말이었다.

치킨집에서 식사하던 한국분이 식당을 찾고 있는지 물었다. 이 시간에 식당을 찾아다니는 한국 사람들을 종종 본다면서 쇼핑몰에 가면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며 얼른 가보라고 했다.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쇼핑몰로 달려갔다.


쇼핑몰에 도착했을 때는 장사를 대부분 마친뒤였는데 다행히 우동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여직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길래 얼른 메뉴를 골랐다. 

일본에서 첫 식사는 비록 우동이었지만 오타루에서 가장 맛있는 맛집이었다. 


저녁 9시.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쇼핑몰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검정 제복을 입은 보안직원 몇 명이 건너편에서 우리를 향해 웃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제복 입은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를 따라왔다. 살짝 긴장하면서 모퉁이를 돌려고 하는 순간 맞은편에서 요원 한 명이 우리를 가로막으려는 듯 서 있었다. 궁지에 몰린 생쥐가 된 느낌이었. 어디론가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들이 몰아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니 어느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촤르르르.... 꽝" 

 셔터 내려가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 보니 문을 닫은 보안요원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  

여행 첫날 식사 한번 요란하게 했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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