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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Dec 27. 2023

홋카이도 설국여행 7

이제부터 우리는 진짜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 내리아름답게 펼쳐진 대 자연에 놀라고,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고 뽀송한 눈밭에서 마음껏 구를 수 있어 신난다. 하지만 내가 가장 기대했던 백조호수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못 찾을까 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졌다. 급한 마음에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야 했다.

"익스큐즈미?"

커다란 사진기를 손에 들고 있던 그분은 사진 작가나 대학 교수처럼 보이는 준수한 외모에 다행히 영어도 곧 잘했다. 집에서 프린트해 갔던 백조호수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겨울마다 홋카이도에 와서 사진 찍고 여행한다면서 내가 보여 준 사진 속 위치를 당연히 알고 있다고 했다. 내가 들고 있던 일정표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아바시리 유빙에 대한 고급정보도 주었다. 유빙 구경을 하려고 자신도 여러 번 갔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고, 특히 요즘은 북쪽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러시아에서 유빙이 떠내려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사실 아바시리에서 유빙 체험을 못하면 굳이 그 먼 곳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지나고 생각하면 유빙체험을 포기하는 바람에 아칸 국립공원에서 하루 더 머물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이 날씨에 노천온천은 힘들지 않겠냐며 노천온천욕을 하겠다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는데 연금보험까지 깨면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동기가 바로 그 노천온천이었고 날씨가 춥다고 절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얼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TV속 여행작가처럼 겨울 호수에서 백조들 배경으로 온천욕을 꼭 하고 싶었다.


백조호수를 볼 수 있다는 장소에 버스가 도착했는데 내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심지어 버스 정류장이나 벤치 한 개 없이 차가운 눈보라만 불어 누가 봐도 내려선 안 되는 곳 같았다. 관광지 표식 하나 없는 이곳에는 집만 몇 채 있고 그냥 봐서는 근처에 호수가 있을 것이라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백조호수가 현지인도 모르는 숨겨진 보석이라니 지도에 위치만 표시해 두고 버스에 앉아 주변을 눈에 넣어 두었다. 이런 곳에 그토록 찾던 장소가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버스에서 만났던 그분 아니었으면 찾는데 애좀 먹었을 텐데 천만다행이었다.


버스가 미소노 온천호텔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딜 가든 온천이 솟아나는 가와유 온센 지역은 하천에서도 온천수가 흐르는 동네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온천 물줄기 하나만 터진다면 대박 났을 텐데 여기에선 그저 평범한 일상이었다. 대형 리조트보다는 작지만 온천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미소노 료칸호텔은 외형만 보아도 하룻밤 묵고 싶을 만큼 매력 있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도 일본 전통식 호텔료칸이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리는 걸 봐서 지역에서 꽤 유명한듯 했다. 내게 고급정보를 주었던 그분도 미소노에서 몇 일째 묵고 있다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아바시리에 있는 숙소를 한국에서 예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머물지 못하지만 내일 다시 와서 미소노 료칸호텔에 투숙하기로 했다. 날도 점점 어두워지는데 아바시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왜 그렇게도 무겁게 느껴졌을까?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내가 일정에 맞게 숙소 예약을 미리 해둔 터라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칸국립공원에서 하루 더 있으려면 아바시리 일정을 취소하고 이후 일정까지 수정해야 했다. 예약한 숙소는 대부분 환불을 받지 못해서 금전적 손실이 생기지만 아내와 나는 이번 여행에서 아칸국립공원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 금전적 부담으로 인한 것이라며 더더욱 판단에 걸림돌이 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남겨 주려고 시작한 해외여행이었고, 건강보험까지 해약해서 시작한 여행이 아닌가? 돈 문제로 고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는지 모른다.


호텔 예약을 모조리 취소하고 이제부터 우리는 진짜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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