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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Feb 03. 2024

홋카이도 설국여행 11

쇼운코행 버스는 가미카와 역에서 출발한다.

승객은 우리 가족과 중년 아저씨 한 명뿐이었다.

쇼운코 온천이 유명하지만 겨울에 계곡는 것도 좀 낯선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 좁은 터널도 지나고 깊고 험골짜기 바로 옆을 지나는데 경치는 좋지만 눈길이라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우려한 것과 정반대로 버스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제법 내서 달렸다.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 종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버스 앞문이 열리기 무섭게 쇼운코 계곡 똥바람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지 않고 곧장 information 건물 달렸다.



밖은 칼바람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데 안내소 안은 평온하고 안락한 분위기였다. 다리고 있던 직원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온 우리에게 쇼운코 소개도 해주고 친절하게 호텔 예약까지 해 주었다. 어마어마한 추위 눈보라를 보고 나니 다른 건 몰라도 우선  뜨끈뜨끈한 온천수에 몸부터 담그고 싶어졌다.



안내소에서 10분 거리에 호텔이 있다고 했지만 눈보라를 뚫고 지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30분도 넘게 걸린 듯했다.  2004년 태풍 매미 순간 최대 풍속 70m/s를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겨울 쇼운코 바람은 안 맞아 본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영하 40도 극저온과 눈보라까지 뒤섞이는 바람에 인간의 오감까지 꽁꽁 얼려버릴 기세였다. 앞에서 엄마손 꼭 잡고 걸어가는 20kg도 안 되는 딸아이의 몸이 비틀대며  한쪽 다리가 살짝 들려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날아가게 되면 내가 어떻게 할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까지 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측하기 힘든 일촉측발 상황이었다, 심지어 내가 왜 이곳까지 와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지 살짝 현타까지 왔다.

중간에 다른 호텔로 들어가 잠시 몸을 추스르지 않았더라면 길에서 유명을 달리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고생 고생해서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데 지치고 힘들었지만 방 온도를 끝까지 올리고 일단 짐부터 풀었다.



가와유 온센 료칸과 비슷한 다다미방으로 예약하길 정말  한것 같다. 온돌방처럼 온몸을 지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방에는 쇼운코 계곡을 직관할 수 있는 큰 창이 있었는데 두꺼운 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계곡의 거친 숨소리는 쇼운코가 가진 야성적 매력이 있었다.


캬!~~~  좋다!

고생 뒤 낙이 온다더니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맥주를 들었고, 아이들은 컵라면, 아내는 녹차를 준비하 각자 다른 방으로 고행의 끝자락을 즐기고 있었다.  야성미 넘치는 계곡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은 짧은 순간에 최고의 행복감을 선물해 주었다. 


대충 허기를 채우고 기모노로 갈아입고 온천탕으로 갔다.

쇼운코 계곡 바로 옆에 노천 온천이 있다니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아들과 나는 머리만 쏙 내놓고 온천을 즐기는데 계곡에서 불어오는 눈보라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는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해산물로 유명하다.

온천을 마치고 이번에는 호텔 뷔페로 갔다. 층층이 쌓인 대게 입 쩍 벌어지게 할 정도였다.

뇌에서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게와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먹는데 용쓰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평생 제대로 한 번 먹어보지 못한 귀한 음식이다 보니 정신줄을 놓은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처럼 빠른 속도로 대게를 먹어 치우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중국사람들이었다. 말 많기로 소문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할 만큼 대게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 같다.


단풍구경을 할 수 있는 가을이 쇼운코의 성수기라고 한다. 지금은 얼음 축제를 한다는 사실도 현지에서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호텔 셔틀버스로 이동이 가능하고 행사장은 처음 우리가 도착했던 안내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오색 찬란한 조명으로 장식된 축제장은 멀리서 봐도 화려하고 웅장한 얼음 나라를 연상하게 했다.

거대한 성벽에 둘러 쌓인 마치 작은 얼음성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스케일이 남달랐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도 신기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얼마나 많은 물을 얼마동안 흘려야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고, 단지 얼음덩이 안으로 살짝살짝 각목들이 있는걸로 보아 목조  뼈대 위에 물을 흘렸지 않았을까 예측할 뿐이었다.

얼음  안은 얼음 조각들이 시각적으로 차갑게 보일 뿐 춥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거센 눈보라를 막아주는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얼음 작품 앞에서 기도를 하며 각자 소원을 하나씩 빌고 갔다.

누군가 얼음조각 위에 올려놓은 동전들은 손으로 빼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히 박혀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그걸 또 빼내느라 낑낑대며 용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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