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하남에 약국을 열고 엄마는 전주에서 하남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 엄마 나이가 67인가 68세였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빠와 오빠와 이모 내외밖에 없는 하남에서 엄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엄마는 미혼인 오빠와 함께 살며 오빠의 끼니를 챙겨주고, 약국에서 나오는 수건과 약사 가운을 세탁해서 다림질해 줬다. 그리고 소아과 처방용 시럽통에 분홍색 뚜껑을 끼는 소소한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깍두기며 열무김치 등을 담아 딸네 집에도 가져다주었고, 그렇게 하남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엄마가 하남으로 이사 온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오빠는 명동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모두가 조금 늦은 두 남녀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엄마도 드디어 숙제를 끝낸 국민학생처럼 마흔이 넘은 오빠의 결혼을 후련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엄마의 일기장
'처음 본 사람한테는 커피를 사도 엄마한테는 좋아하는 쌍화차 한 잔 사주는 법이 없는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갔고, 결혼한 오빠는 이제 엄마 집이 아닌 오빠의 신혼집에서 출퇴근을 하니 우리 엄마 혼자 심심했겠네. 그날 엄마는 우체국으로 짧은 외출을 하고 다시 어두운 집에 우두커니 앉아 아침 일찍 놀러 나간 아빠를 기다렸겠네.'
'엄마를 하남으로 불러와 살게 해놓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 무심한 딸들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을 전해주는 텔레비전이, 엄마보다 열 두살 어린 막내 동생 지언 이모가, 아래층 사는 설권사님이 훨씬 낫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엄마는 심심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