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의 이름을 찾아서
선생님~ 그런데 저희 반은 이름이랑 그림 안 넣어요?
국어 글쓰기 시간. 우리는 자작자작이라는 에듀테크를 이용하며 글을 쓴다. 아이들이 로그인해서 우리 반으로 접속해야 하는데 한 아이가 다른 반은 타이틀도 있고 사진도 들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우리 반은 5학년 2반이라는 제목과 사진은 기본배경인 파란 화면이 다였다.
맞아요! 선생님 우리도 하나 만들어요!
우리도 멋진 걸로 하나 해요. 옆반도 다 있다고 했어요.
역시나 우리 임들께서는 글쓰기보다는 작명에 관심이 많아 보이신다. 아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는 교사이기에 이 상황을 교육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전문성을 마음속에서 발휘하였다.
좋아! 그럼 너희가 우리 반의 특성과 목표를 생각하면서 제목을 만들어 봐. 그냥 이름을 붙이는 건 없어. 이름에 의미도 이어줘야 하고 어울리는 그림으로도 그려줬으면 좋겠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으로 자작자작, 하이클래스 타이틀에 넣도록 할게.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는 순간은 언제나 과제가 자신들과 가깝게 느껴지는 때이다. 우리 반에서 머리 회전이 가장 빠른 예안이는 벌써부터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눈치였다. "우리 반은 5학년 2반이니까, 오이김밥!" 아이들은 예안이의 아이디어를 듣고 웃음이 쏟아졌다. 물론 내 얼굴에는 경고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아, 선생님! 이제 의미 만들 거예요. 벌써 금지는 금지예요!" 내 표정은 어찌나 그리 빠르게 읽는지 능청스럽게 빠져나가는 예안이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다.
예안이가 시작한 음식버전의 제목은 다른 아이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켜줬다.
오무라이스, 오이무침, 오리고기이 등
얘들아, 다른 반 제목은 막 존재의 실, 이렇게 뭔가 멋지고 느낌 있는데 우리는 진짜 오므라이스 이런 거 할 거야??
나의 우려는 나만의 우려인 듯 내 말을 듣고도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음식에 어떻게 의미를 넣느냐에 몰두하고 있었다.
선생님! 김밥에는 여러 가지 재료를 넣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반에도 다 개성 있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재료가 많이 들어가니까 맛도 좋고, 다들 김밥은 좋아하잖아요.
제희가 말한 오이김밥의 의미는 제법 멋있고 감동적이었다. 재희가 말한 것처럼 이번 우리 반 아이들은 유독 개성이 넘쳐서 어울리기 어려울 것 같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큰 다툼 없이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정말 오이김밥 속에 여러 재료들처럼 누구 하나 빠지면 어색했다. 우리 반의 특성을 이렇게 멋지게 이어 줄 수 있는 음식은 정말 오이김밥이 적절했다.
선생님! 그리고 오이김밥의 김은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우리 반 친구들을 다 끌어안고 있으니까요.
"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반은 오이김밥반입니다.'라는 마음속 이야기가 입 밖으로 바로 나올 뻔했다. 오이김밥이라는 요리에 우리 반 모두가 들어갈 수 있었다. 다 다르지만 서로 꼭 끌어안고 하나의 멋진 존재가 되었다. 멋진 제목이 아닐 수 있고 우스울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우리 반 같은 제목이다. 아이들도 모두 내 마음과 같은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투표 결과도 오이김밥이 만장일치였다.
우리는 그렇게 오이김밥반이 되었다. 아이들이 그림 오이김밥 속에는 여러 재료도 들어가 있고 그 앞으로 웃는 아이들이 앉아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미소가 지어지는 반은 없을 것이다. 올 한해는 내가 눅눅해질 때까지 아이들은 품에 꼬옥 안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