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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바다섬 Nov 20. 2024

가을은 꽃 피는 계절

꽃 핀다 - 나태주 

꽃 핀다 - 나태주


없는듯 있다가

꽃핀다


죽은듯 숨었다가

꽃핀다


꽃 필 때에야 겨우

알아본다


여기는 살구꽃

저기는 복숭아꽃


또 저기는 진달래

그리고 철쭉꽃


그렇다면 너는

무슨 꽃을 피우고 싶으냐?


따뜻한 남쪽 나라의 초등학교에도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유달리 따뜻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자 아이들도 웅크려 드는 지 오늘 점심시간에도 밖에서 나가 노는 아이들이 적었다. 오랜만에 교실이 점심시간인데도 왁자지껄하게 아이들이 많이 모여 놀았다. 교탁에 앉아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다 보면 항상 내 시선은 1 분단 4번째 줄 창가 자리로 간다. 그곳에는 점심시간이면 항상 책을 읽고 있는 유이가 있다. 


유이는 말이 적은 아이다. 누군가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 며칠이고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내향적이다. 모두가 발언을 하는 학급회의 시간에도 유이는 입술만 움직일 뿐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유이 옆에 앉은 아이들은 유이 얼굴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서 겨우 듣고 대신 이야기를 해주고는 한다. '선택적 함묵증이 아닐까 이전에 교우관계에서 큰 상처가 있거나 한 걸까' 그런 유이를 보는 내 마음은 항상 의문과 불안이 가득했다. 학부모님은 상담도 해 보았는데 기질적으로 많이 내향적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학교생활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크게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된다고 하시지만 내 눈에는 항상 유이가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늘도 유이는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책을 읽는다. 그런 유이를 앞자리에서 제은이가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유이야~ 이번 학예회 발표할 때 나랑 미술작품 발표할래?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우리 몇 작품씩만 모아서 같이 하자. 어때? 응?" 특유의 넉살을 발휘하며 유이를 설득하는 제은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이뻐 보였다. "아니 유이야! 정말 부탁이야~! 우리는 딱 미술발표가 딱이라니까! 그치?" 집요하게 유이에게 애교를 부리며 설득하는 제은이가 유이에게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슬그머니 내 마음속에 고개를 들었다. 그때 유이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미소가 웃음으로 붉게 변하는 것도 보았다. 분명 유이는 웃고 있었다. 제은이는 유이의 그런 표정을 보며 자기도 씨익 이쁘게 웃는다. 


가을에도 꽃이 핀다면 저런 모습일까?

가을과 겨울은 생명들이 시들거나 추운 계절을 버티내기 위해 애쓰는 죽음의 계절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어떤 생명은 꽃을 피운다. 다 각자의 시간이 있고 피어내는 모습들이 다른 것이다. 어쩌면 유이는 그런 시간을 지나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일도 유이는 특별히 말없이 조용히 책장을 넘길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유이만의 꽃을 피워나갈 것이라고 나는 믿고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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