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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꾸라지 Jul 19. 2024

임대인도 싫고 임차인도 싫다

하지만 임차인이면서 임대인이다.

5월에 한국에 나갔을 때 마침 임차하고 있는 집과 임대하고 있는 집의 계약을 갱신해야 할 때였다. 보람엄마가 다 해왔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할 줄 알았는데 임대도 임차도 조금씩 문제가 있어 내가 진행하는 걸로 숙제가 떨어졌다.


임차하고 있는 아파트는 전세를 조금 올리는 게 미션이고 임대는 좀 복잡하다. 임차한 아파는 새 아파트인데, 임대인으로부터 이런저런 요구가 들어와 조금 마찰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쪽에서는 아저씨가 연락이 오기 시작했으니, 이쪽도 남자가 나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임차한 아파트는 주변 시세에 맞게 전세금을 조금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카톡을 보냈더니, 조금만 사정을 봐 달라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처음에 제시했던 금액보다는 조금 낮춰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날짜를 정해 부동산에서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우리가 임대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얘기가 조금 복잡하다. 우리와 전세 계약을 맺고, 임차인이 해당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버린 것이다. 작년에 보람 엄마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연락이 와서는 큰일이 났다며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외국에 있어 내가 할 수 없는 게 별로 없어 결국 보람 엄마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재계약을 안 하고, 묵시적 갱신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참고로 재계약을 하면 (재계약에서 인상된 금액에 대한) 우선순위가 은행 다음인 2순위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작년에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올해 초까지, 늦어도 재계약이 있는 5월까지는 대출을 갚기로 했었는데 등기를 확인해 보니 아직 그대로라며 나보고 알아보라고 한다.


이번에 나가서 부동산 등을 통해서 좀 알아봤다. 결론은 보통은 임대 준 물건으로 담보를 잡지 않으며, 은행도 이런 집으로 대출을 하지 않는 게 통상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임대인은 다른 건물과 함께 대출을 신청했고, 은행은 이걸 허락해 준 것이다. 임차인이 이미 임차한 아파트로 대출을 받아 버리는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그 대출을 갚기 전에는 임대인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가겠다고 했을 때 대출을 갚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게 갚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임대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출을 갚기 전에 다음 세입자를 못 구한다고 봐야 한다. 전세금을 돌려봤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런 처지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전셋집은 두 부동산을 통해 계약을 맺었다. 우리가 찾아간 A부동산 사장님이 근처 B부동산과 얘기해서 계약이 성사됐다. 먼저 A부동산으로 찾아갔다. A부동산에서는 이럴 수 없다고, 해결해야 한다면서도, 실제 임차인과 거래는 B부동산에서 하고 있기에, B부동산에 얘기해서 임차인이 대출을 갚도록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일주일 뒤 A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찾아가니 미안해하며, 일이 잘 안 풀렸다고 한다. B부동산에서 임차인과 얘기를 해보니, 지금 당당 대출을 갚을 생각이 없다고, 지금 계약 내용이 불편하면 나가라는 취지의 답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B부동산으로 직접 찾아갔다. B부동산에서는 현재 상태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분위기였다.


만약 우리가 이사를 나간다고 하면 그때는 임차인에게 얘기해서 대출을 갚도록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출이 없어야 안심이며, 지금 갚을 수 없는데 우리가 나가겠다고 하면 갚을 수 있는지 걱정이라고 따졌다. 그리고 다른 부동산에 알아보니 임대한 집으로 대출을 안 하는 게 상식인데, 이런 걸 방치하고 있는 부동산이 이해가 안 간다고 따져 물었다. B부동산에서는 은행에서 검토를 해봤을 때 그만큼 신용할 수 있니까 대출을 해줬다는 논리였으며, 당장 대출을 갚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했다.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무책임해 보이는 B부동산과 임차인에 화가 났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집에 와서 보람 엄마와 의논했다.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게 맞는지, 지금 이사를 한다고 하면 임차인이 대출을 바로 갚아줄 수 있을지, 이번에는 한번 더 재계약을 하고 다음에 이사를 하는 게 맞을지, 이래저래 얘기를 해봤다. 결론은 묵시적 갱신을 하고 일 년 더 이 집에서 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임차인에게 연락을 했다. 대출이 아직 그대로여서 묵시적 갱신을 했으면 한다고. 대출을 갚으며 재계약을 하든 하겠다고. 임차인한테 연락이 와서는 그렇게 하자면서도 기분을 살짝 상하게 하는 답이 왔다. 이사 간다고 하면 바로 갚을 능력이 되는지, 그렇다면 왜 임대한 집으로 대출을 받았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냥 참고 묵시적 갱신하는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비싼 중개료를 내고 계약을 했으면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임대든 임차를 하든 불쑥불쑥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작금의 전세사기를 봐도 그렇고 임대도 싫고 임차도 싫고 그냥 내 집에서 내가 마음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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