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지평선에 붉게 물든 약속
대구 동구 신천동, 세 들어 살고 있던 큰 집 파란 대문 너머 내리막길 끝 모퉁이 작은 화단에 앉아서, 다섯 살 소녀는 석양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쪽 지평선 너머로 해가 붉게 물들며 사라지는 광경. 아이는 오늘 또래의 어떤 여자아이가 귀에 대고 말해준 미국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상상했습니다.
"저 해가 지는 곳쯤에 있을까, 미국이라는 나라... 언젠가 가보고 싶다."
그것은 아이 일상 속 단 하루의 생각이었지만 뇌의 장기 기억 장소에 소중히 간직된, 어쩌면 하나님이 심어주신 소망의 씨앗이었습니다.
신천동은 아이의 엄마 아빠가, 한 번의 유산을 거쳐 아이를 낳고 친할머니의 심술에 못 이겨 독립해서 살게 된 곳입니다.
아이는 아주 어릴 적 기억을 잘 하는 편입니다. 신천동의 어릴 적 몇 가지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낡은 사진첩의 사진처럼 스틸 컷으로 머릿속에 잘 저장되어 있습니다.
신천동으로 이사 오던 날, 청소와 정리로 한창 바쁜데 장난을 너무 많이 쳐서 혼을 내는 엄마에게 "엄마, 나 안 사랑해요?"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사랑하지, 절대 미워할 수 없지"라는 대답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는 약국에 간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며 큰길까지 마중 나가서는, 만나서 엄마 허리를 부둥켜안고 함께 돌아온 따뜻한 기억도 있습니다. 하루는 엄마의 월급날이었는지 엄마와 함께 가서 새 옷을 사 입고, 사진관에 가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폼을 재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동네 친구들이 이유 없이 자신을 둘러싸고 때렸던 날. 밤에 엄마가 퇴근해서 조용히 약을 바르고 싸매주시던 그 손길. 아이에게 엄마는 함께 있으면 아랫목처럼 너무 따뜻했고, 항상 그리움의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아빠가 때려서 대야에 얼굴을 씻으며 울던 날, 엄마 옆에서 조용히 위로하던 기억.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에게 가다가 빨갛게 단 곤로에 앉아 무릎에 화상을 입은 기억.
서울 이종사촌 집 아파트에 놀러 가서 사촌들이랑 친구네 갔다가 먼저 집에 간다고 나와서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가, 밤이 되어 길가에 앉아 있었더니 외삼촌이 찾아서 자전거에 태워 우는 엄마를 만났던 기억.
1976년 11월의 어느 밤, 엄마가 아빠랑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가셨던 날의 기억.
1979년 어느 아침, 사이렌이 울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급한 소리에 뭔지 모르게 불안했던 박정희 대통령 서거의 날의 기억.
아이는 그때는 잘 몰랐지만, 하나님이 모든 순간에 그와 함께 계셨다는 걸 잠잠히 깨닫게 됩니다. 서울에서 길을 잃고 헤맸을 때도 엄마에게 그를 돌려주셨고, 어린아이가 혼자 길을 다니는 모든 위험, 집 안팎의 모든 크고 작은 위험에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