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보듬은 시간들
어느덧 2025년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남아 있던 휴가 덕에 제법 긴 휴가를 보내고 있다.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은 탓에 며칠째 집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올해는, 과연 만족스러운 한 해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아니요’였다.
나는 해가 끝날 무렵이면 늘 그 한 해를 하나의 장으로 떠올리며 나만의 챕터 제목을 붙이곤 한다.
그렇게 돌아본 스물아홉의 챕터는, 유난히 여백이 많은 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글을 쓰는 김에 2025년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CEO와의 대화 자리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했고,
사진 동호회를 기획해 회사 동기들과 함께 출사를 나가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 군대 후임들….
정말 몇 년 만에 다시 연락이 닿아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시간을 안주 삼아 웃고 떠든 날들도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와 윌, 그리고 나,
셋이서 제주도를 여행했다.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를, 그래서 더 귀한 추억이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마음 한편이 놓이기도 했다.
4월의 벚꽃을 원 없이 만끽했고,
늦봄의 바람과 주말 낮의 느긋함을 충분히 누렸다.
부모님의 버킷리스트였던 골프 라운딩을 처음으로 함께했고,
가족과 함께한 첫 동남아 여행도 다녀왔다.
마사지와 음식 앞에서 환하게 웃던 부모님의 얼굴이 지금도 또렷하다.
지겨웠던 골프를 배우는 와중에,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 싶을 만큼 재미있는 테니스도 시작하게 되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강릉 여행을 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을 다녀오기도 했다.
시칠리아, 몰타, 로마.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전혀 다른 풍경 속에서
잠시 다른 삶을 엿본 시간이었다.
가장 친한 초등학교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 사회도 맡았다.
부탁해 줘서 고마웠고,
내게도 오래 남을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8월의 마지막 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을 했다.
그 이후로는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연말이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틈 사이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채워가고 있었다."
... 뭐야?
아무 생각 없이 적어 내려갔을 뿐인데, 여백은커녕 숨 돌릴 틈도 없이 시간을 가득 채워온 한 해였다.
정말 나라는 사람도 웃기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2025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해라고 생각했고, ‘고민과 주춤함이 가득했던 시간’ 같은 소제목까지 끄적이고 있었는데, 끝에 다다르자 생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나 자신을 잠시 내려놓고, 그동안 소홀했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한 해를 사용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고, 시간이 생기면 해야지”라며 미뤄두었던 일들이었다. 그동안은 쉽게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을 올해만큼은 기꺼이 해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야 한다고 믿고, 조금만 쉬어도 불안해지던 나에게 흘러간 이 1년은 너무 무난하고 평온해서 그래서 오히려 공백처럼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되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은 지나치게 귀했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처음 나에게 던졌던 그 질문을 다시 해본다.
과연 올 한 해는 내게 만족스러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예’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