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으로 뛰어들다

당신은 '어른'이 된 후, 빗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본 적이 있는가?

by 경년

최근 장마가 끝이 났다고 떠들어 댄 지 채 며칠이나 지났다고, 일주일째 비가 퍼붓고 있다.

술이 한갓지게 취하고 지하철역에 발을 들였을 때, 차가 끊겼다는 역관의 외침이 귓전을 때렸다.

집에 가기 위한 내 마지막 수단은 야간버스뿐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장마가 끝났다고 뉴스에서 떠든 기상청 놈들 당장 나와라..'


불같은 금요일 밤, 나 같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중생, 모두를 구제해 주느라 버스는 한참을 빙빙 돌아 집에 도착했다.

마침내, 내가 내릴 차례가 되자 하늘에선 미친 듯이 비가 쏟아 내리고 있었다.

도로엔 이미 빗물이 가득 차 찰박찰박 소리를 냈다.

다들 그런 비를 맞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비가 어디로 내리는 도통 모르겠는 그런 비 말이다.

사방에서 워터밤처럼 빗물을 뿌려대는 탓에 우산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였다.

그 찰나,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 비를 굳이 피해야 하나..?'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우산을 접었다.

술이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을 것이다.


집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은,
내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순수한 해방의 찰나였다.

비를 피하려고만 살아왔었고 맞으면 기분이 안 좋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그런 비를 맞지 않아야 한다는 구속을 벗어 버린 그 순간,

근래 나를 답답하게 옭아매던 답답함까지 빗줄기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억수같이 퍼부어대는 비를 온몸으로 받으며,

모자부터 셔츠, 그리고 신발까지 폭싹 젖었을 때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상쾌함을 맛보았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피해야 할 것’이라 여겼던 그 무언가를 ‘아무렴 어때’ 하고 받아들인 순간, 비로소 진짜 자유가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평생 비를 맞지 않으려 몸을 사리던 내가, 어느 순간 “에라이, 그냥 맞아버리자”고 결심한 바로 그 찰나에 경험한 해방감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결국 삶은 ‘아무렴 어때’라는 태도를 장착했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노홍철이 무한도전에서 늘 외치던 '좋아, 가는 거야!'가 아마 오늘 빗속으로 뛰어드는 그런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늘 ‘좋아, 가는 거야!’를 외치며 두려움을 웃어넘길 줄 아는 그의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일탈에 대한 환상과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그런 삶을 지금까지 고수해온 결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에 ‘부러움’ 이상의 ‘동경’을 보내고 있다.


늘 ‘안 된다’, ‘나쁜 거니까’라며 피하기만 했다면, 우리 삶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을 터다.

'아 그냥 망하면 어때, 해보는 거지'라는 행동의 결과가 생각보다 귀한 경험을 선물하고 인생을 보다 극적인 선택지로 이끌지도 모른다. 나 또한 술이 취하지 않았다면 평생 비를 맞는 경험을 불쾌하다고만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한 번쯤은 과감하게 우산을 던지고 빗속으로 뛰어들어도 보자.

혹시 모르지. 나처럼 미친 듯이 시원한 해방감을 맛보게 될지도?

그러니 당신도 제발, 정말 제발.

정말 할지 몰랐을 거 같은 그 순간에,

머뭇거리고 있는 그 순간에 과감히 몸을 던져 보길 바란다.

인생은 어차피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반전의 순간을 여지없이 맞이할 때

그 희열과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이제 나는 더 이상 비를 맞는 것이 싫지 않다.


나는 사진첩에 비가 오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