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릇이 종지인 것을 부끄러워 말자고
사람은 본디
나고 자란 그릇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들이부으면
넘치기 마련이고
그 넘치는 것을 아까워
서글퍼하기도
가진 것을 남과 비교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어느 그릇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각자 그릇의 크기는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는 조금은 느리게 채우고,
더 느리고 비워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밥그릇과 네 국그릇에 담긴 것을
서로에게 냅다 부어 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워지다, 비워지다
바닥이 보일 즈음에
마르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채워 넣는 연습을 익혀야 한다
채워 넣는 것이
내가 되었든, 네가 되었든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비우고 채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가끔 부족해 보이는 옆에도 채워주고
또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고이 비워낸 그릇 하나
잘 마르도록
뒤집어 두고 떠나면 되지 않을까
살면서 처음 써본 '시' 같은 것일 테다. 그 시절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데까지 다다르려다 오히려 몸살을 앓고 있던 중이었다. 세상은 더 높이, 더 환하게 빛나기만을 바라는데, 가만히 보면 그게 누구를 위한 찬란함이고, 또 누가 그 높이를 정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신없이 남들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겠다고 발버둥을 쳤는데, 정작 그 '더 나은 삶'이 나를 위한 것인지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나와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같은 글은 결국 내가 나와한 화해였다. 내가 나를 마주한 시간이었고 나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헌사였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나 '안빈낙도(安貧樂道)' 뭐 그런 건 아니다. 다만 허겁지겁 나를 채우려다 휘청이며 모두 쏟아버리곤, 젖은 바닥만 보고 좌절하던 내게 건네던 소박한 위로였다. 남과 나를 비교해서 나를 더 쪼그라들게 하지 말라고, 조급해져 정작 나 자신도 돌보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라고.
그 후로 나는 내 속의 무언가가 다 동이 나지 않도록 경계한다. 때로는 조금 덜 쓰고, 또 어느 정도만 채우면서 적당히 흔들려도 넘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맘을 채우되 너무 가득 채우기보다는 작은 켠은 남겨 두어야 한다. 텅 비어 보이는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기꺼이 누군가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자리이자, 남이 들어와 따뜻이 머물 수 있는 여백이니까.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은 빈 그릇을 고이 내려놓고 떠나는 순간까지,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는 온화한 연습이 아닐까?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그릇의 잔잔한 파동을 느껴보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따스한 손길로 채워주고, 부드러운 미소로 비워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