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무엇 하나 정답이라곤 없었던 20대를 정리하며
군대의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나는 작은 의미라도 붙잡고자 펜을 들었었다. 오늘 하루는 어제와 여지없이 똑같이 흘러갔고, 너무나도 아까운 그 젊은 시절을 모두 흡수해 버리는 검은 구덩이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나의 '지금'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렇게 20대 초반의 일기에는 군대, 이별, 소주 이런 날것이었고 거친 것들이 가득하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500일가량의 하루를 기록하다 보니 어느새 머리는 길고 복학생이 되었다. 전역만 하면 인생은 꽃길인줄 알고 쓰디쓴 하루를 꾸역꾸역 삼키다 마침내 다시 나온 사회였다. 하지만, 나의 2년간의 기대와는 무색하게 20대 중반동안 내 일기장은 마치 내가 남긴 감정과 실패가 차곡차곡 퇴적된 심연의 바닥처럼, 내 약함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게 퍽퍽하고 버거울 때 나는 주로 일기장을 펼치곤 하였다. 일기를 쓰는 동안에는 마구 어질러져 엉망이 되어버린 머릿속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독이고, 채찍질하고 또 내 인생을 각색한 어느 소설이 어디쯤에 와있는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실수로(?) 대학원에 들렀다가, 마침내 대기업 2년 차 개발자로서 여정을 걷는 지금—그 모든 순간이 내 작은 기록들에 의해 이어져 왔다.
이제 내 일기는 예전보다 깊은 숨을 내쉰다. 어린아이의 날 것 같은 문장은 어느새 차분한 호흡을 얻었고, 이제 더는 불안을 토해내지 않는다. 요즘 내가 남기는 한 줄 한 줄이 더는 쓰레기가 아닌, 살아 있는 성장의 증표로서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편지를 한 장 써드린 적이 있다. 편지를 읽으신 엄마는 내 글이 더 이상 아침을 차려주던 어린애의 글이 아니라고. 어디에서 읽어볼 법한 작가가 쓴 글 같다고 하셨다. 물론, 엄마 눈에야 그렇게 보이는 것 즘은 알고 있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내 글이 마음에 작은 파동을 낼 수 있다면 그 마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20대가 다 저물기 전에, 이 조각나있고 흩뿌려져 있는 일기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이 작은 공간에 나의 글을 남겨보기로 했다.
2026년 12월 31일, 20대가 끝나는 날까지 이곳에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가려 한다.
지나온 나의 청춘을 되새김질하며, 삶의 한 페이지씩을 천천히 다시 넘겨보고자 한다.
부디 이 기록들이, 때로는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따뜻하게 붙잡아 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