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미에 있어서 만큼은 불꽃같은 남자다. 일정한 소득이 생기고부터는 여러 가지 취미를 가졌는데 그중 제일 처음 오토바이에 한참 빠졌다.(짧은 기간 동안 4대의 오토바이가 나를 스쳐갔다) 그렇게 활활 타고 어느 순간 흥미를 잃어버리는 게 나의 특징이다. 캠핑 또한 마찬가지인데(역시 짧은 기간 동안 5개의 텐트가 나를 스쳐 갔고 지금은 3개의 텐트를 갖고 있지만 캠핑을 자주 하지 않는다)
그렇게 또 빠져 버린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이 자전거이다.
엄복동의 나라에서 나도 여느 초등학생과 마찬가지로 엄마가 사주신 자전거를 3번 정도 잃어버렸던 것 같다. 나라 잃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부서진 자물쇠를 바라보곤 했다. 대학교에 가서는 15만 원짜리 철제 로드 자전거를 한 대 샀었는데 그것은 아직도 대학교 어딘가 방치되어 있다.(이 부분에 있어서는 대학교에 굉장히 죄송한 마음)그리고 직업을 가지고 나서 클래식 자전거를 한 대 샀었는데 이사 오면서 전 집에 방치되어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자전거를 거쳐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전기자전거를 구매했다. 고향에 오면서 자전거 타기 정말 좋은 도로가 많이 있었다.(자전거 국토종주 길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어느 날 목적 없이 휴가를 길게 냈었는데 그때 동안 하루라도 빨리 타고 싶어서 무지성구매했다.(금액은 약 200만 원) 국산이라고 우기지만 천천히 뜯어보면 중국산인 안지오 폭스라는 자전거였는데 정말 잘 타고 다녔다. 마실용으로는 힘도 안 들이고 유유자적 풍경을 보며 힐링하고 있자면 무릉도원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힐링용 전기자전거 안지오폭스
그런데 힘을 안 들이고 탈 수 있는 자전거가 곧 단점처럼 다가왔다. 문제는 전혀 운동이 되지 않았고 전기 배터리가 있기 때문에 배터리가 꺼지면 거의 고물 수준으로 무겁다는 것이다. 한 번은 자전거 타다가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 배터리가 꺼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무기력감에 빠진 후로 장거리를 가기가 무서워졌다.
그렇게 '운동이 안된다+배터리가 꺼지면 고물이 된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바꾸기로 결심을 했다. 자전거 붐이 일면서 로드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는데 그 로드 자전거라는 게 너무 본격적인 것 같아서 싫었다. 편하게 탈 수 있을 것 같은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구매했다.(금액은 약 90만 원)
하이브리드 자전거인 트렉 fx3
이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운동도 하고 힐링도 하고 장거리도 갔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사람은 모두 안다는 전설의 이화령 고개도 한 번도 안 쉬고 올랐다. 그런데 여느 두 바퀴 달린 것들이 그랬듯이 조금 타다 보니 기변병이 생겼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태생이 로드자전거와 mtb자전거의 중간인데 이것을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타다 보니 로드보단 느리고 mtb보단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자전거 국토종주를 계획 중이었는데 하이브리드 자전거보다는 로드자전거를 구매해 빠르게 돌파하고 싶었다. 자전거 페달과 신발을 결합시켜 주는 클릿슈즈도 달고 싶었다. 그렇게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중고로 내다 팔았다.
곧이어 국토종주를 가기 위해 바로 자전거를 구매했다. 트랙의 로드자전거인 도마니 al2이다. 입문용 로드자전거인데 국토종주를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구매했다.
트렉의 입문용 로드자전거 도마니al2 피팅모습
이렇게 안지오폭스, fx3를 거쳐 도마니 al2까지 오기가 3개월이 안 걸렸다. 쓰고 보니 정말 변덕이 심한 스타일이다. 클릿슈즈를 장착하고 보통은 적응기를 거쳐야 하지만 시간이 없다 보니 바로 국토종주를 떠났다. 충주> 부산> 인천> 충주로 오는 장장 600여 km를 자전거로 이동해야 하는 국토종주는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국토종주를 함께한 나의 도마니al2
떠나기 전에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출가하는 심정으로 엄청난 자아성찰을 하고 돌아오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단순히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는 그 과정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하고자 하면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나는 도전해야 행복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불꽃 같이 타고 홀연히 사라졌던 나의 다른 취미들과는 다르게 자전거는 오래도록 내 옆에 남아 있는 취미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변이 있겠지만 그것 또한 아직 남아 있는 나의 철없음의 대가로 생각하고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