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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25. 2019

만족의 지속시간

오토바이 기변병에 대하여


처음 '그 친구'를 데려온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농구를 보러 갔다가 서울 온 김에 구경이나 하자며 갔던 바이크 샵에서 10개월 할부를 긁어 버렸다. 헬멧까지 총 200만 원. 그때는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다. 처음 시동을 걸 때의 그 설렘.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나를 이토록 설레게 했던 무언가가 있던가... 매일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밖에 그 녀석이 세워져 있는 것만 봐도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을 데려온 지 3달쯤 됐을 때다. 참고 참다 중고 매물로 올렸다. 자고 일어나니 구매하고 싶다는 문자가 10개 정도 와있었다. 바로 다음 날 면허가 없다는 한 청년이 천안에서 수원으로 달려와서 내 오토바이를 화물로 가져갔다. 얼떨결에 하루 만에 오토바이를 팔았다.

처음 그 친구

곧장 새로운 오토바이를 그날 구매했다. 첫 번째는 중고 오토바이였지만 이번에는 신차를 샀다.  자동차도 새것을  타본 적이 없던 나는 혹여 먼지라도 묻을까 봐 아끼고 아껴 가면서 탔다.


그러던  어언 2개월. 그것이 왔다. 바로 기변병.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다는 불치병.


어이없으리만큼 짧은 만족의 시간에 나는 나 자신이 너무 황당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행복=만족이라면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이 행복 아닐까. 그렇다면 큰 덩이의 만족(굳이 말하자면 비싼 물품으로 얻는 만족)과 잦은 여러 개의 만족 중에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소소한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다. 무엇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작은 것에 자주 만족을 느끼고 그것에 감사하는 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뻔한 결론이지만
이것 만큼 내게 진리로 다가오는 것도 없다.



그래서 더 비싸고 빠른 오토바이로 바꾸는 것보단 4000원짜리 커피 한 잔에 브런치에 글을 자주 올리는 것이 내겐 더 행복한 일이다.

당연하고 중요한 이치를 읽고 물욕을 일으킨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도 쭉 반려 오토바이로 함께 늙어가길..


정지영 커피로스터즈 남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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