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래 Feb 02. 2022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는 친구들이 있었는가 하면 평생 운전할 생각 없다며 딱 잘라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따기는 따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두 유형 사이에서 방황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면허 취득을 계속해서 미뤘던 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아찔한 상상들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 과실로 외제차라도 긁으면 어떡하지? 나는 멀쩡히 가고 있는데 음주운전 차량이 덮쳐 오면 어떡하지? 유튜브에 쏟아지는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며 두려움은 끝도 없이 쑥쑥 자랐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두려웠던 건 강아지, 고양이, 고라니, 사람 등 살아있는 무언가를 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에게 누군가를 죽일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끔찍하게 무서웠다.


그럼에도 면허를 따야겠다고 다시금 마음을 먹은 건 친구들 때문이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 ‘토 맛 토마토 VS 토마토 맛 토’ 같은 주제로 말싸움을 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능숙하게 차를 모는 걸 보면 약간의 위기감을 느꼈다. 회사에서 차량을 지원해줬다며 그 차를 몰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도 있었다. 우리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는 친구의 낯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운전이 어른스러움의 척도가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만 아직 미성숙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왔다.

하루는 해마와 하늘소의 차를 얻어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동업을 하는 둘은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은 보통 출근하기 전에 장을 보고 구입한 물건들을 뒷자리에 싣고 다녔다. 뒷자리에 쌓여 있는 수많은 식재료들은 무질서하면서도 나름대로 공고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오른쪽 구석에 붙어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차분한 음악과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만이 차 안을 조용히 채웠다. 소리들을 스쳐 보내며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 운전을 하던 하늘소가 조수석에 앉은 해마에게 말을 건넸다.

“저쪽 길로 갈까?”

“그래.”

나는 유리창에 기대어, 노선을 결정하는 둘의 뒤통수를 가만히 보았다. 택시를 타든, 가족 차를 타든, 친구들의 차를 타든 나는 항상 뒷좌석에 앉아 창문을 통해 옆을 바라보았다. 내가 조수석에 앉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항상 그래 왔는데, 이날은 갑자기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핸들을 잡고, 전방을 보며 가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운전면허를 딸 적기였다. 하지만 역시 운전은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일이었다. ‘아 이제 진짜 면허 따야 되는데…’ 수시로 울려 퍼지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깊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또 시간은 흘렀다. 그러던 중 취업 준비 중인 쏘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쏘는 중학교 2학년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우리는 취업, 이직, 전세 대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10년 전을 회상하며 그때보다 한층 성숙해진 우리의 모습을 은근히 뿌듯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뇌의 일부분이 운전면허에 잠식돼 있던 나는 뿌듯함을 깨는 농담을 던지고 말았다.

“근데 우리 둘 다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어.”

“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운전을 못 한다는 거지.”

“아 뭐야아.”

쏘는 분위기를 깬 나를 질책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꺄르륵 웃었다. 어쨌든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운전에 대한 공포를 성토하다가 공감하다가 웃퍼하다가… 결국엔 함께 운전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우리는 각자의 집에 돌아가 비용과 도로주행 난이도를 우선순위에 놓고 적당한 학원을 물색했다. 3일간의 폭풍 검색을 통해 우리가 선정한 학원은 바로,

가평에 위치한 N학원이었다.

뭐? 어디? 엄마는 학원의 위치를 몇 차례나 되물었다. 엄마가 황당해할 만도 한 것이 쏘와 나 둘 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있는 크고 작은 운전 학원이 열 개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도 가평에 있는 학원을 골랐던 이유는 첫째, 서울 학원보다 저렴했기 때문이고 둘째, 그 복잡한 뱅뱅사거리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이에서 면허를 딸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덩치 크고 성질 급한 자동차들 사이에서 작고 노란 시험 차량 안에 움츠려있을 나를 그려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감정에 휩싸였다.


비단 우리만 이런 사고 회로를 거친 게 아니었는지, N학원은 서울에 셔틀버스를 운행시키고 있다고 했다. 처음 학원에 가던 날, 미리 고지받은 장소에 나가보니 몇 명의 사람들이 각자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두 명이었던 나와 쏘는 웃음을 참으며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오전 7시 정각이 되자, 수상해 보이는 봉고차가 한 대 들어섰다. 설마 저게 셔틀버스…? 나와 쏘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어슬렁대던 사람들이 봉고차로 우르르 몰려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차에 탑승했다. 그렇게 서울 겁쟁이들은 가평으로 향했다.


커리큘럼은 대략 이랬다.

Day 1. 기능 시험을 4시간 연습하고 시험을 본다.

Day 2. 도로주행을 4시간 연습한다.

Day 3. 도로주행을 2시간 더 연습하고 시험을 본다.

시험에 한 번도 떨어지지 않으면 3일 만에 면허를 딸 수 있는 체계였다. 그 사실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해서, 한 번 떨어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료를 결제한 카드 영수증을 본 순간 한 번에 붙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중 한 명만 붙더라도 서로 미안해하지 말기로 약속하고 장내로 들어섰다. 


기능 시험에서 응시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코스는 단연 직각 주차였다. 나 역시도 직각 주차를 할 때마다 래퍼처럼 혼잣말을 하며 핸들을 꺾어댔다. 직각 주차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총 두 개가 있었다. 앞자리가 그나마 주차하기가 쉬웠는데, 먼저 출발한 사람이 항상 앞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나는 뒷자리에 주차를 하다가 종종 삑사리를 내고는 했다. 

그래도 네 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나니 코스에 제법 익숙해졌고, 어느덧 시험을 칠 시간이 되었다. 두 명씩 조가 되어 한 회차에 시험을 보는 방식이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주문처럼 되뇌던 우리는 잠시 후, 쏘와 내가 같은 조가 되었다는 발표를 들었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시험장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했다. 쏘와 나는 긴장돼 굳은 얼굴로 각자의 차에 탑승했다. 안내 음성에 따라 쏘가 먼저 출발했고, 뒤이어 나의 시험 시작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내 입으로 뱉지만 귀로는 꽂히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며 시동을 켜고,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기어를 변동하고, 좌측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오르막길을 올랐다가, 내려오면, 마의 직각 주차 구간이 나왔다. 

쏘가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나는 뒷자리에 주차할 것을 각오한 상태였다. 그런데 쏘가 뒷자리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어머, 쏘는 딱히 자리를 안 가리나?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앞자리에 주차를 시작했다. 

마음이 한층 편해진 나는 여유롭게 주차 구간에서 빠져나와 교차로를 통과하고 가속 구간도 가뿐하게 지나왔다. 도착점에 다다르니 시험에 통과했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그대로 차 지붕을 뚫고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표정 관리를 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강사가 와 차 문을 열어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답한 뒤 마음껏 이 기쁨을 나누고자 쏘에게 가보려는데 강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뒷자리에 주차하는 거 어렵다고 한 거, 친구가 듣고 양보해준 거예요.”

깜짝 놀라서 쏘가 있는 쪽을 보니, 이미 쏘는 날 보며 저 멀리서 웃고 있었다.


쏘와 함께 가평에 세 번째 가던 날 우리는 나란히 도로주행 시험을 통과했다. 그렇게 25살 11월, 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운전면허증이 나왔다. 


면허를 따고 내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대단한 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신분증이 하나 더 생긴 게 변화라면 변화랄까. 우리 집은 몇 년 전에 차를 팔았기 때문에 연습을 할 차량도 없어서, 도로주행 이후로 핸들을 잡아본 적도 없다. 노란색 시험 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을 운전하는 상상은 여전히 나를 두렵게 한다. 그렇지만 지갑 투명 창 안쪽에 당당히 자리한 운전 면허증을 보면 아직도 슬그머니 뿌듯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가끔 택시를 탈 때 일부러 조수석에 앉는다. 혼자 탄 승객이 냅다 조수석에 앉는 걸 기사가 의아하게 바라보면 나는 괜히 안전 벨트를 점검하며 딴청을 피운다. 그러다 차량이 출발하면 탁 트인 앞을 향해 고개를 든다. 아무도 모르게 오른발을 살짝 들어 상상 속 액셀을 밟는다. 앞 차를 보고, 옆 차를 보고, 뒷 차를 보기 위해 백미러로 시선을 옮긴다. 비밀스럽게 운전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나는 미래를 볼 수 있다. 나의 손과 발이, 내가 원하는 곳까지 나를 데려다 줄 미래를.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스, 서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