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베란다 실외기 앞에는 무시무시한 정체를 가진 꼬질한 운동복들이 걸려 있다.
사실은 100일도 넘은 것 같다. 나는 운동복을 빨지 않았다. 심지어 이 옷으로 운동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라 수십 번을 했다. 정확히 11월 중순부터 2월까지 51번이나 된다. 정신 나간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유가 있다. 나만의 지속가능한 달리기를 위한 지점이다. 나름대로 도전을 하고 싶었다.
나는 운동을 하면 이 무시무시한 옷들을 입고 나간다. 땀을 흠뻑(?) 흘린 조깅을 약 30분 전후로 하고 나서 이 옷을 그대로 벗어서 베란다에 걸어서 말렸다. 처음 몇 번을 입고 나서는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과연 얼만 큼이나 세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도전심이 들었다. 아내는 미쳤다고 혀를 내둘렀다...
놀라운 사실은 그다지 불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입을 때 바싹 마른 것이 약간 쾌적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내 기준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악취가 나거나 운동 상의 문제는 없었다. 그냥 매번 입던 운동복의 느낌 그대로이다. 이것이 가능한 부분은 겨울철이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영하를 오르내리는 11월에서 2월의 기온은 옷을 항상 쾌적하게 만들어주었다(나만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불편하면 바로 멈출까도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기기도 하다.
이 도전을 위한 복장은 이너 패딩, 바람막이, 기모 바지 3가지였다.
당연히 내 몸에 직접 닿는 옷은 세탁을 한다. 타이즈나 마스크, 속옷은 했다. 이것까지 세탁하지 않는 것은 인격과 인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가끔 양말은 몇 번씩 더 신었다. 어쨌든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고 싶었던 것일까?
100일 동안 더 나은 달리기를 위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첫째는 나만을 위한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달리기 시장이 커지면서 러닝 패션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업체들도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러닝의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건 뭐 운동을 하는 건지 패션쇼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인데 나 조차도 달리면서 뭘 입을지 고민했고, 상당히 스트레스였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의 달리기,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그저 순수하고 도구적인 목적이 없는' 달리기가 필요했다. 어차피 대부분 혼자서 달리고 누가 보는 것도 아니니, 그냥 집에서 거의 버리다시피 한 옷가지들을 입어도 너무 편안했다.
둘째는 내 달리기 삶의 루틴을 정말 단순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본 운동을 하기 전후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최소한 준비 운동과 샤워 외에도 챙겨야 할 것이 상당히 많다. 특히 뭘 입고 달리지를 고민하는 행위는 정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이는 운동하는 습관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단순해야 한다. 심플 이즈 베스트다. 실제로 나는 출근할 때 정장을 입는데, 옷 가지가 많은 편이어도 스타일은 네이비 계열 정장 하나다(아주 미묘하게 다르다). 그렇다 보니 출근의 루틴이 상당히 간소하고 하루의 시작을 집중하는데 많이 도움을 받는다. 역시 그 옛날 스티브 잡스가 목폴라만 입고, 요즘 일론 머스크가 컨테이너에서 사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나는 루틴 신봉자다. 그래서 달리기도 오래 지속하기 위해 단순하게 만들어 가고 싶었다.
마지막 셋째로는 친환경을 생각한 지점이었다. 기후 위기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우리는 인류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코로나19를 지나 영리 기업을 중심으로 친환경을 대표하는 ESG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공공, 복지 영역에서도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위한 ESG 경영은 이미 친숙하다. 개인적으로 ESG 관련 논문을 2개나 쓰고, ESG 경영 우수 기관에서 근무하는 나부터 실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활용이나 업사이클 등의 실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비를 하지 않고, 환경 문제를 발생하는 행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환으로서 운동복을 세탁하지 않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게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51번을 안 빨았으니 나름대로 친환경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3월 3.1절을 맞아 나의 옷들을 오염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드디어 옷을 세탁하였다. 좀 더 지속해 보려고 했지만, 영상 기온으로 올라감으로 인해 보건 위생과 타인을 위해(가족) 큰 마음을 먹고 나만의 챌린지를 내려놓았다.
비록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겨울 동안 나 자신과 세상을 위한 달리기를 했다고 자부한다. 단순한 루틴을 만들었고 온전히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울러 친환경도 고려한 달리기였다.
나는 요즘의 과도한 달리기 문화를 비판한다. 유행에 편승한 달리기. 타인을 의식한 달리기. 몰려서 뛴다고 욕을 먹는 러너들.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반 친환경적인 달리기 대회들. 복잡하고 나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다. 조화롭고 일상 속에 녹여있는 '좋은 달리기'를 지향하고자 한다.
나의 100일은 지속가능한 달리기였다.
이후로 날이 또 추워져서 운동하고 그대로 베란다에 걸어 놨다!
오늘부터 다시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