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되고 특이한 지점들이 있다.
나는 나름대로 취미 부자라서, 러닝 말고 다른 계정들도 SNS에서 운영하고 실제 모임을 하면서 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느꼈다. 러너는 뭔가 다른 류의 사람들과는 좀 다른 미묘한 특징이 있는 것을... 다소 주관적일 수는 있지만 경험적인 측면을 토대로 느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러너들 사이에서도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첫째는, 일단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숫자를 좀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나 뛰세요?라는 질문으로 10킬로, 하프, 풀 코스 기록을 확인하고, 매월 얼마를 달리는지를 확인한다.
"요번달에 100킬로 밖에 못 뛰었어요..."
"어이구~ 좀 열심히 하지 요새 운동 소홀하게 하네!, (술을 좀 줄여)" 같은 일반인이 봤을 때는 매우 이상한(?) 대화를 나누고는 한다.
당연히 페이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일상이다. 1km에 6분대 달리기, 5분대 달리기, 4분 50초, 40초, 30초... 몇 초의 페이스에 엄청난 의미와 노하우를 담은 에피소드들이 오간다. 달리기를 하면 정말 시간과 숫자가 모든 일에 기준이 된다.
둘째는, 사람들이 좀 긍정적이다. 내가 달리기를 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신 의학적으로 이는 꽤 근거가 있는 부분이다. 달리기를 하면 도파민, 세로토닌 같이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물질과 집중을 잘하게 하는 성분이 몸에서 배출된다. 이로 인해 내가 아는 러너들은 대부분 일반인에 비해서 성격이 좋고 긍정적이다. 실제로 이런 말도 있다.
"달리기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허락한 마약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SNS 좋아요도 좀 잘 눌러주는 편인 것 같다. 심지어 댓글도 잘 달아준다. 특히 요새 슬슬 열리기 시작하는 달리기 대회라는 공통적인 이슈들로 한 번씩 모이는 영향도 있다. 대회 한 번 치르면 러닝 SNS 계정들도 달린다. 그만큼 확 활성화가 되는데, 솔직히 엄밀히 비교해서 다른 육아나 독서 계정 등은 확실히 이런 게 덜하다... 물론 내 수준에서의 경험 차이일 수도 있다. 참고적으로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어쨌든 정말 러닝 계정이 확실히 좋아요를 잘 눌러준다.
셋째는, 사람들이 만나면 달리기 이야기만 한다. 이것도 약간 중독의 영향인 듯하다. 특히 많이 달리는 러너들은 러닝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꽤 많다. 거의 종교다... 이렇게까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마라톤 같은 장거리 달리기는 일상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가볍게 어쩌다 뛰는 수준은 절대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다. 마라톤은 가장 정직한 운동이다. 훈련뿐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일상과 식단까지 최적의 기록을 낼 수 있게 맞춰줘야 한다. 이렇게 일상을 사니, 달리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다.
넷째는, 아침에 유독 일찍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밤늦게 나가고는 한다. 둘 다 사실 좀 문제다. 왜냐하면 둘 다 어두울 때 나가는 거니... 가정이 있다면 약간 의심(?) 비슷하게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슨 문제 같은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달리기를 할 뿐이다. 직장이나 개인 생업을 하는 상황에서 낮시간에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점점 더워지는 날씨와 햇빛의 자외선을 좋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달리기를 새벽이나 늦은 밤에 하는 경우가 많다.
비율로 보면 진짜 장거리를 뛰는 러너들은 아침형 인간이 조금 더 많은 듯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9시에 자서 3시에 일어나는 사람도 봤다. 4~5시에 일어나는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들은 6시 동호회 훈련에 참여하는 경우이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렇게 달리면 하루 일이 안되고, 어쩌다 주말에 한 번 그렇게 달리면 그날은 거의 꼭 낮잠을 잔다.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던 듯싶다.
밤에 뛰는 경우도 있는데, 퇴근 이후 시간을 이용하거나, 한 여름에는 해가 떨어진 이후 LSD(Long Slow Distance) 장거리 훈련을 하는데, 대략 2~3시간씩은 뛰어줘야 해서 자정을 넘도록 뛰곤 한다. 그렇고 집에 들어와서 마시는 맥주는 아주 꿀맛이다. 물론 다음날 컨디션과 건강은 좋은 장담은 못한다. 아, 물론 새벽에도 뛸 수 있다. 어쨌든 달리기에도 정말 할 것이 많다. 러너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달리기이다.
다섯째는, 여행을 가면 꼭 달리기를 하려고 한다. 이건 정말 좋은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에도 가족 여행이나 직장에서 연수를 가면 꼭 러닝화를 챙겨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여행 간 동네를 돌아보는 데 있어서 달리기는 더욱 여행의 재미와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 동네를 더욱 잘 알게 되며 나만의 추억으로 남는다. 정말 이건 꼭 러너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끔 잠적(?)을 하는데, 부상을 겪는 경우이다. 그럼 소리 소문 없이 SNS가 조용해진다. 주변과도 연락이 잘 안 되고, 연락에 답도 안 한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1년 가까이도 사라진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사람의 몸은 회복이 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단순 부상이라면 1년이 넘는 건 정말 드문 경우 같다. 웬만하면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회복을 하여 1년 이내에는 복귀를 한다. 하지만 간혹 그 이상 원인불명으로 아픈 사람들이 나온다. 내가 이 케이스에 해당될 줄은 몰랐다.
나는 개인적으로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편이다. 하지만 러너 누구를 만나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다. 다시 그 감정과 교류를 느껴보고 싶긴 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20~30킬로를 달리고, 한여름 밤에 자정이 넘도록 LSD를 하고. 여행런을 하고, 대회를 나가서 나의 완주 마라톤에 대한 썰을 풀고 싶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러너가 아니다.
그냥 가볍게 일상 운동을 하는 조깅 수준의 달리기도 벅차다. 처음에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많이 내려놓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월 50km 정도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땀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정말, 이 또한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잠이 들면 가끔 꿈을 꾸곤 한다.
여전히 이상한 러너의 삶을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