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면 가정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종종 마라톤 대회를 기점으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솔직히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외로 나 같은 러너들이 많다. 달리는 행위 자체로 가족들과 사이가 안 좋아지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에 대한 후회도 된다. 달리는 게 뭐가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말이다...
3월은 마라톤 대회의 계절이다. 대략 달리기 대회는 무더위와 추위를 피해 봄의 시작인 3월과 가을인 10월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략 시기로는 2~4월, 9월~11월이 되겠다. 약간 쌀쌀한 느낌의 기온이 달리기 좋은 날씨이다. 생활 체육인과 일반 시민까지 참여해야 함에 따라 건강에 대한 안전을 고려한 시기 선택인 듯 보인다. 이에 반해 선수들의 하계 올림픽 마라톤은 가장 무더운 7~8월에 열리는 것을 보았을 때 정말 프로들의 신체 능력과 노고는 차원이 다름을 깨닫게 된다.
최근에는 기후 위기로 인해 날씨가 정말 덥다. 여름이 굉장히 길어짐에 따라 대회의 시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25년 2월 대구마라톤 2023~2024년 11월 JTBC 마라톤 등 주요한 대회들도 더위를 피해 열리는 듯하다. 봄과 가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4월과 9월도 대회가 많지만 달리기에는 더운 날씨로 인해 본 게임을 위한 연습용 대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좋은 기록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달리기 퍼포먼스에 있어서 겨드랑이 개방 여부는 정말 중요하다.
달리기의 퍼포머스는 날씨, 특히 기온에 굉장한 영향을 받는다. 조금만 기온이 높아져도 좋은 기록을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잘 안타는 나도 대회 때는 무조건 싱글렛(민소매)을 입는다. 참고로 나시라고도 하는데 일본어로 좋지 못한 표현이다. 나는 젊었을 때(20대와 30대 초반까지는) 민소매 입고 뛰시는 분들(아저씨)을 보면 이해를 못 했다. '무슨 자신감이지?' 싶었지만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살기 위한 본능이다. 열심히 달릴 때에는 겨드랑이로 무조건 열을 빼줘야 한다. 러너에게 싱글렛은 사랑이다.
비 오면서 달린다는 우중런 때 차라리 좋은 기록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높은 습도가 호흡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열을 식혀줘서 굉장히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이 우중런만 찾아서 달리는 분들도 있다. 당연히 달린 이후의 보온과 컨디션 관리는 필수이다.
무엇보다도 달리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과다한 욕심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달리기 대회는 그 욕심을 부추기게 된다. 그 말인즉슨 많은 시간을 투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일상이 달리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변에 소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가족들에게 잘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우리 주변은 다 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과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말이다.
달리기에 있어서 솔직히 가장 좋은 루틴은 하루 뛰고, 다음 날은 쉬는 거다. 러너들의 표현으로 ‘하뛰하쉬’라고 한다. 달리면서 무리한 근육을 다음날은 쉬면서 풀어주는 거다. 그렇지만, 찐 러너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면 하뛰하쉬를 지키기가 정말 어렵다.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해진다. 내 달리기 능력이 도태되어 간다는 조급한 생각도 들게 된다.
마라톤 대회는 일단 준비부터 가정 불화의 씨앗을 만들고, 심하게는 사회적인 오해까지도 불러일으킨다.
달리면 뭐 딱 달리기만 하는가. 운동복도 갈아입고, 준비운동도 하고, 다 달리고 오면은 또 씻고 빨래와 같은 정비를 한다. 짧게 뛰어도 최소 하루에 1~2시간은 잡아먹는다. 그걸 매일 하고 있는 가족을 보면 이해가 안 될 법도 하다. 세부적으로는 그 이후에 식단, 체중, 기록 등의 관리와, 식단관리, 동호회나 달리기 코칭 학원에서 훈련까지 하면서 결전의 날을 준비하게 된다. 심지어 나 같은 사람은 대회 준비를 보람차게 인증해야 하니 SNS로 하루종일 휴대폰만 붙잡고 있기도 한다.
심지어 대회가 열리는 주말은 그 하루 종일을 잡아먹게 된다. 새벽부터 대회장에 일찍부터 가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게 된다. 대회장이 집에서 거리가 멀면 1박 2일 코스로 전날도 간다. 어쨌든 가서 준비운동 하고, 만반의 준비를 거쳐 오전 내 시간을 써서 완주한다. 또 그러면 사람들 만나서 달린 썰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완주하느라 고생한 나에게 당연히 술 한잔 허락해야 한다. 마침 배도 고프겠다 신나게 먹어대면, 낮술로 취한 상태로 느지막하게 집에 들어가서 이제 잠까지 자면 완벽하다.
그럼 이제, 가족들의 욕을 이불 삼으면 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더욱 가관은 달리기를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피할 수 없게 부상이 온다. 러너와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다쳤다고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나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자신의 실비 보험과 우리나라 건강보험료를 쓰고 나면, 그에 따른 어김없이 기묘한 효과가 나타난다. 달리기를 싫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심지어 나 같이 정말 갈 때까지 가게 되면... 주변에서 이런 주장을 펼치곤 한다.
"역시 마라톤 하면 잘못되는 거라고..."
예전에는 내가 조목조목 근거를 대서 절대 달리기가 유해한 운동이 아님을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렇게 된 나는 지금은 할 말이 없어진다. 면목 없게도 사회적으로 달리기가 문제 있는 운동이라는 오해에 내가 일조하고 말았다...
나는 가족을 위해 달린다는 망상을 했다.
사실 나는 달리기를 할 때 오해를 했다. 나는 가족들을 위해 달리는 거라고. 건강한 남편과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꿈꿨다. 젊어 보이고 멋있는 아빠, 나중에 함께 마라톤을 아이들과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힘든 훈련을 이겨내서 좋은 기록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달리기에 집착했던 내가 가진 망상에 가까운 자기만족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달리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뭐라 했을 때는 싸움이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가족을 위해 달린다는 인지 오류에 입각한 마인드가 노력한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생각되어 오히려 마음의 서운함과 불편함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과도한 달리기의 폐해다.
나 홀로 적당히 달리는 지금에 와서는 확실히 가정 문제가 줄었다. 아니 사라졌다. 아이들이 자러 들어갈 때 집안에 음식물과 쓰레기를 버리면서 30~40분 동네 앞을 달리고 들어오니 서로 윈윈이다. 나도 무리해서 뛰는 게 아니니 크게 몸이 힘들지 않아 밤에 자기 계발을 함에 있어서 집중도 잘 된다. 가끔은 달리고 와서 아내와 맥주를 함께할 시간도 되니 더욱 소통의 증진은 물론 일상이 훨씬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하는 달리기가 필요하다. 누군가 달리기가 우선이냐 가족이 우선이냐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답변을 '달리기'라고 할 사람이 있는가?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정말 조화로운 달리기가 우선 시 되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를 사랑하지만 과도한 달리기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자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꼭 건강이 나빠지는 차원의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많이 달리면 건강보다 그 외적으로 여러모로 문제가 생긴다. 오히려 작년부터 몸에 문제가 생기고 본의 아니게 달리기를 줄이고 나서 내 인생이 더욱 좋아진 부분을 알리고자 한다.
정말 적당히 달려야 인생이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