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의 감성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복지 기관에서는 거의 매년 복지 사업을 홍보할 소식지를 발간한다. 올해 나도 내가 맡은 분야로 '조사연구'에 대해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성과를 소개할 수 있는 지면을 할당받게 되었다. 명색이 내가 누군가! '영향력은 거의(아예) 없지만'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브런치 작가 아닌가. 직원들에게 나의 압도적인 필력을 보여주고자 마음먹었다.
일주일 간 성의껏 작성한 결과물을 취합 폴더에 자랑스럽게 넣었다. 주에 한 일 중에 이 일을 제일 열심히 한 듯하다. 역시 브런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담당부서의 과장이 조용히 와서 나에게 말했다.
"여럿이 검토했는데 부장님 자료에 좀 피드백이 많아요..."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홍보지에 이렇게 쓰시면 어떻게 하나요? 전혀 공감이 안되네요"
"부장님의 감성을 아무도 이해 못 하겠네요"
"이런 거 넣으면 저작권에 문제 돼요."
셀 수 없는 지적 피드백을 들었다. (글로서는 많이 줄인 거다)
"아니, 다들 글을 좀 개성 있게들 써야지!"라는 나의 이야기에
"이런 글을 블로그나 브런치에나 쓰시는 글이죠... 무난하게 써주셨으면 하네요."라고 하길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서두가 긴데, 그래서 화가 난 나는 챗GPT, 퍼플렉시티, 클로드와 같은 AI를 돌려서 그중 좋은 내용을 조합해서 1시간 남짓 수정해서 폴더에 던져 넣어버렸다. 그리고 손을 떼고 잊어버렸다. 일주일쯤 지난 후 왜 나한테 또 수정 피드백이 없냐고 물어봤다.
"(엄지 척) 너무 좋더라고요!"
글쓰기에 현타가 온 순간이었다. 내가 쓴 1주일을 심혈을 기울여 쓴 글보다 단 1시간의 AI의 결과물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나는 그동안 AI를 무시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인간의 노력과 감성을 따르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미 AI는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젠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잘 써보기로 했다.
2025년 소식지 맞이 Vol.25 '철산 온(ON) 동네
복지 조사연구의 방법인 '욕구조사'는 현장에서 수행하는 조사 방법론과 실천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복지기관인 '복지관'이 중점적으로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복지 기관들도 각자의 형태로 진행한다. 굳이 복지가 아니라도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케팅을 위한 소비자 조사, 정치 여론 조사 등 모든 영리, 비영리의 기획에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복지는 지역과 이용자의 욕구를 기반으로 복지 서비스를 설계하고 제공한다. 이는 복지 이론과 실천의 기본이다. 특히 1997년 8월 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서 사회복지시설을 평가할 수 있게 됨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의무화되었다. 아울러 많은 복지 예산의 투입으로 더 큰 전문성과 노력을 요구함에 따라 복지 현장에서 '욕구조사'는 더욱 필수가 되었다(유태균, 2000).
욕구조사는 시설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욕구조사를 가장 중시하고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복지 욕구조사'라는 이름으로 복지관을 이용하는 이용자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전체 주민을 조시하여 지역의 복지 욕구를 확인한다. 그 보다 더 이용자(회원)를 중심으로 하는 단종복지관(노인, 장애인 등)은 '이용자 욕구조사'라는 이름으로 조사 연구를 수행한다. 그 외 시설들도 나름의 특성을 반영한 조사가 진행된다.
진행하는 연구 방식도 여러 가지이다. 그중 주로 하는 방식은 설문지를 활용한 양적조사이지만, FGI, 인터뷰를 통한 질적 조사도 일부 진행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설문지가 80%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대단위의 조사를 수행하고 공신력과 책무성을 인증받아야 하는 공공시설인 복지기관의 특성상 많은 인원을 조사하는 서베이 양적 조사가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장의 욕구조사는 조사방법론에 근거해 평가했을 때 연구라고 보기에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운영된다. 이는 여러 가지 한계와 제약이 많은 현장에서의 조사는 단편적이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사를 위한 조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으로 욕구를 파악하고 적용하는 수렴적 욕구조사(convergent needs assessment model)를 제안하고 있다(전진호, 한상미, 2003). 그러나 아쉽게도 20년이 넘게 지난 현재 이 주장은 현장과 동떨어진 학계에서의 '요원한' 이야기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은 이전보다는 현장의 연구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긴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나도 이제껏 치열한 현장에서 대안을 찾지 못했었다. 현장의 사회복지사는 실천이 우선이지 연구는 후순위 일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조사연구를 즐기고 숙련된 나조차도 업무에 치이면 일단 조사연구절차의 준수는 후순위로 접게 된다. 솔직히 10년 넘게 연구를 했지만, 이 간극을 좁히기엔 너무 많은 과정과 절차가 있다. 조사방법론에 맞춰 연구를 수행하는 건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쉽게 해낼 수 있는 간단한 차원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조사연구, 지역복지 욕구조사도 AI로 할 수 있게 된 듯하다.
비웃어왔던 AI가 연구 조사설계와 설문지 제작, 조사 분석까지 상당히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젠 AI의 시대이다. 올해 뭔가 희망을 찾게 되었다. 실제로 AI를 쓰면 획기적으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사 연구에 대한 이론과 경험이 완전히 숙지되지 않은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욕구조사의 기획을 AI의 도움을 받아 수행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법을 내가 정리해 보았다. 이제 질문하면 된다.
시작을 위한 첫 번째 프롬프트이다.
‘복지관(종합, 노인, 장애인)’에서 사회복지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 중에 하나로서 '지역복지 욕구 조사'를 알고 있니? 내용을 좀 설명해 줘.
이제부터 결과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