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라바드의 낡은 펍, 시선의 여백이 가르쳐준 진실
인도의 공기는 단순히 뜨거운 것이 아니라 무거웠습니다. 피부 위에 겹겹이 쌓이는 열기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되어 어깨를 짓눌렀고, 그 눅진한 열기 안에서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의 둔탁한 회전음은 어느새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고막에 눌어붙었습니다. 나는 숨 막히는 열기를 피해 들어선 어두운 실내에서, 유일한 탈출구인 창밖을 멍하니 응시했습니다.
창밖의 세상은 과다 노출된 필름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하얗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낡은 선풍기 날개는 그 지독한 공기를 이겨내려 사투를 벌이듯 쉼 없이 움직였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시원한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람 대신 날카롭게 조각난 빛의 파편들이었습니다.
회전하는 날개 사이로 조각나 들어오는 빛은 벼려진 칼날처럼 눈을 찔러댔고, 메마른 공기는 모래알을 삼킨 듯 목구멍을 사정없이 긁어댔습니다. 그 순간의 창밖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마주하기조차 버거운 '하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때, 정적을 깨고 테이블 위에 내려앉은 것은 한 잔의 시원한 맥주였습니다.
잔 표면에 땀방울처럼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들은 창밖에서 새어 들어온 조각난 빛을 머금어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 차가운 유리잔이 열기에 마모된 손바닥에 닿는 순간, 죽어있던 감각들이 서늘한 냉기를 타고 파동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잔 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탄산의 기포들은,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삐걱거리는 선풍기 날개와 극명하게 대비되며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전율은 단순한 액체의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짓누르던 열기를 단칼에 잘라내는 예리한 감각의 셔터였습니다.
차가운 위로가 내면에 스며들자,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너그러운 여백이 생겨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나를 공격하던 날카로운 빛의 파편들은 이제 맥주잔의 기포와 어우러져 찬란하게 부서지는 축제의 불꽃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숨 막히던 정적은 어느덧 고요한 평온으로 다시 읽혔습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저 창밖의 하얀 열기와 눈을 찌를 듯 날카로웠던 빛의 파편들은 사실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요. 태양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낡은 선풍기는 여전히 무거운 공기를 이기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풍경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온도뿐이었습니다.
결국 세상은 내가 어떤 마음의 창을 갈고닦느냐에 따라 그 모습을 완전히 달리합니다. 지옥 같던 열기조차 시원한 맥주 한 잔이라는 마음의 '틈'을 통과하자, 사진가로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찰나'로 변모한 것입니다.
가장 뜨거운 창가에서 마주한 가장 차가운 안식. 나는 이제 나를 가로막은 선풍기 날개와 그 너머의 빛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좁고 조각난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내 손 안의 작은 냉기를 통해 비로소 정직하게 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과 환희, 열기와 냉기는 결국 한 끗 차이의 시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카메라의 화각도, 화려한 피사체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풍경을 마주하는 나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사진집 <틈;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의 세 번째 챕터 '창'에 배치된 사진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8년의 기록을 비워내고 100여 개의 사진으로 채운 저의 첫 사진집에는, 브런치에 다 담지 못한 더 깊은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화면 너머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종이의 질감과,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마주하는 '틈'의 여정을 소장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집 <틈;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 구매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