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 그 못다 한 이야기의 기록. 프롤로그
숨 가쁜 밀집의 삶, 그 끝에서 찾은 여백의 조각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메라를 매개로 세상을 바라보며, 저 또한 숨 가쁜 밀집의 삶을 살았습니다. 더 많은 성취와 화려한 장면들로 삶을 빽빽하게 채워야만 인생이 완성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마음은 더 무겁고 공허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채움'이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틈'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카메라를 든 채로 스스로에게 '틈'을 허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위해 덧칠했던 화려한 색감들을 하나둘 걷어냈습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 동안 내면의 틈을 찾아내듯, 하드드라이브 속에 잠들어 있던 지난 8년의 기록을 열어보았습니다. 모니터 너머로 쏟아지는 사진만 수십만 장. 그것은 제 삶의 증거였지만 동시에 저를 짓누르는 무게이기도 했습니다. 그 방대한 기록들 사이에서 제가 진심으로 숨 쉴 수 있었던 '여백'의 조각들을 골라내는 과정은, 제 삶의 태도를 다시 세우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진을 과감히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그토록 찾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제게 '비워내는 연습'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틈’은 결핍이 아니라 준비 자세입니다
우리는 삶을 ‘꽉 채우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쏟아붓습니다. 해야 할 일, 가져야 할 마음, 쫓아야 할 목표들로 가득 찬 일상 속에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정작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숨 쉴 공간조차 없다는 사실을요. 저에게 사진집 <틈;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은 스스로를 멈춰 세우고, 내면의 공간을 비워내는 고독한 여정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낯선 길을 걸을 때, 저는 비로소 주변의 공기와 빛, 그리고 찰나의 침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렌즈는 세상을 멈추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제 안에 너무 꽉 차 있던 것들을 잠시나마 덜어내고 그 빈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채우는 여백이 되어주었습니다. 결국 ‘틈’은 결핍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필요한 준비 자세였습니다.
기억이 아닌 '추억'에 관하여
이 사진집에는 그렇게 고르고 골라낸 100여 장의 사진들로 만들어낸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100여 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 흐릿해지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너무 선명하게 남아 다른 조각들을 덮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나 변해버릴 기억이 아닌,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흘러가 버리는 기억과 달리, 우리 마음을 울렸던 좋았던 경험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고 포장되어 영원히 간직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예쁜 포장지 속의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사진은 찰나를 가두는 틀입니다. 하지만 제게 그 사진 한 장은 단순히 고정된 이미지가 아닙니다. 프레임 너머에는 미처 포착하지 못한 그날의 공기, 코끝을 스치던 냄새, 그리고 셔터를 누르기 직전 일렁이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사진집이라는 정제된 결과물 뒤에 숨겨진, 때로는 서투르고 때로는 벅찼던 ‘과정의 추억’들을 공유하려 합니다. 완벽한 구도보다 소중했던 그날의 방황, 채우기 위해 비워내야만 했던 여정의 조각들. 사진집의 페이지 사이사이 숨어있던 저의 ‘틈’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