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로 꽁꽁 싸맨 나의 자화상 <틈;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Ep3
사진집의 첫 번째 목차, 그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이 사진은 표지 사진과 같은 여정 중 기록된 장면입니다. 정확히는 피렌체로 향하기 전 잠시 머물렀던 로마의 어느 비 내리는 밤, 그 좁고 축축한 골목의 흔적이죠.
사실 2주간의 유럽 여정은 저에게 로망인 동시에 막연한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발을 내디딘 크로아티아는 그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다정했습니다. 대도시든 소도시든 만나는 사람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우리의 여행, 그리고 새로운 시작인 결혼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늦은 밤에도 안심하고 산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도시는 항상 밝고 평화로웠습니다. 유럽은 소매치기와 사기꾼과의 전쟁터라는 걱정은 어느새 제 머릿속에서 말끔히 씻겨 내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들어선 순간, 평화롭던 공기는 순식간에 날카로운 긴장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로마 공항에서부터 마주한 북적이는 인파와 그들의 낯선 눈빛들은 마치 우리를 탐색하고 노려보는 듯했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서늘한 경계심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요새를 지키듯 가방마다 자물쇠를 꼭꼭 걸어 잠그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걷는 동안 등에 꽂히던 그 차가운 시선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죠. 진땀을 빼며 도착한 숙소에 겨우 짐을 풀고, 다 늦은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섰을 때도 긴장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제 몸의 일부와 같은 카메라에도 자물쇠를 채우고 걷는 길, 마주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을 던졌습니다.
“안전한 여행 하세요.”
“물건들 꼭 조심하세요.”
그것은 친절한 조언이었지만, 동시에 이곳이 얼마나 ‘틈’이 없는 곳인지를 상기시키는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꽉 막힌 도시는 저의 두려움을 배로 증폭시켰습니다.
틈 없이 밀집된, 봉인된 세상 그곳에서 마주친 나의 자화상
그때 마주한 장면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골목, 그곳에는 숨 쉴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이 서 있었습니다. 건물의 문들은 육중한 셔터와 자물쇠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고, 그 차가운 철제 위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와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죠.
그 모습은 마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격리하고 방어하는 거대한 요새 같았습니다. 크로아티아에서 느꼈던 ‘열린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서로를 경계하며 빽빽하게 밀집된 ‘닫힌 공간’만이 존재했습니다.
저는 그 골목에 서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혹은 제 마음이 이토록 틈 하나 없이 꽉 막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요. 어쩌면 별것 아닐 수도 있는 두려움이, 타인의 친절한 조언조차 방어적인 태세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물쇠로 꽁꽁 싸매야만 안전을 느끼는 이 도시의 풍경은, 여유를 잃어버린 채 무언가를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제 삶의 자화상과도 같았습니다. 이 사진은 그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비 내리는 로마의 골목, 틈 없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느꼈던 그 지독한 밀집의 기록으로부터요.
이번 ‘밀집’ 목차의 사진들 중 일부는 ‘픽셀 스트레치(Pixel Stretch)’ 방식을 사용하여 그 감정을 극대화했습니다.
대개 이 기법은 사진에 속도감을 주거나 역동적이고 화려한 표현을 위해 사용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 정반대였습니다. 제가 느꼈던 밀집된 세상의 압박감, 그리고 그로 인해 극도로 축소되어 버린 시야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길게 늘어진 픽셀들은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진 채 우리를 압착합니다. 그 속에 갇혀버린 개인의 시선은 자유를 잃고 좁은 곳만을 응시하게 되죠.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자유롭지 못한 그 선들을 통해, 저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밀집의 무게'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꽉 막힌 골목을 지나, 저는 다음 장인 [시선;틈 너머의 발견]의 여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사진집 <틈; 채우기 위해 비워낸 여정들>의 첫 번째 챕터 '밀집'의 마지막에 배치된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 8년의 기록을 비워내고 100여개의 사진으로 채운 저의 첫 사진집에는, 브런치에 다 담지 못한 더 깊은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화면 너머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종이의 질감과,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마주하는 '틈'의 여정을 소장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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