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 the hardest time,, we grow the most
(내맘대로 문학기행)
- in the hardest time, we grow the most.
아직 한참 멀었지만 봄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아이패드에 민들레를 그려보았습니다.
이름도 예쁘지요. 우리곁에 늘 있을것만 같은 ‘민’자와 ‘들레’로 만들어진 이름은 수수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박완서님의 단편 소설 "옥상위 민들레꽃" 이 생각나서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짧은 소설이지만 여기 옮기긴 조금길어서 뒷부분만 올립니다.
엄마가 친구한테 온 전화를 받는 대목부터입니다.
"글쎄 셋이란다. 창피해 죽겠지 뭐니, 우리 동창이나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 아니면 둘이지 셋씩 낳은 사람은 하나도 없더구나. 창피해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단다. 어쩌다 군더더기로 막내를 하나 더 낳아 가지고 이 고생인지, 막내만 아니면 내가 지금쯤 얼마나 홀가분하겠니?
막내만 아니면 내가 남부러울 게 뭐가 있니?"
. . .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에겐 내 가족이 필요한데 내 가족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건 나에겐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나를 막내, 우리 귀여운 막내 하면서 끼고 돌았기 때문에 나는 한번도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사랑은 거짓이었습니다. 나는 엄마를 진짜로 사랑했는데 엄마는 나를 거짓으로 사랑했던 것입니다. 나는 옥상에서 떨어지기 위해 밤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낮에 떨어지면 사람들이 금방 보게 되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살려 놀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밤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밤을 기다리는 동안 춥지도 않았고 배고프지도 않았습니다. 아파트 광장에 차와 사람의 움직임이 멎자 둥근 달이 하늘 한가운데 와서 옥상을 대낮같이 비춰 주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달하고 나하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때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송이의 민들레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 엄마 아빠와 함께 야외로 소풍 가서 본 민들레꽃보다 훨씬 작아 꼭 내 양복의 단추만 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민들레꽃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이상해서 톱니 같은 이파리를 들치고 밑동을 살펴보았습니다. 옥상의 시멘트 바닥이 조금 패인곳에 한 숟갈도 안 되게 흙이 조금 모여 있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흙이 아니라 먼지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을 날던 먼지가 축축한 날, 몸이 무거워 옥상에 내려앉았다가 비를 맞고 떠내려가면서 움푹한 그 곳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 먼지 중에 민들레 씨앗이 있었나 봅니다. 싹이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게 하기에는 너무 적은 흙이어서 잎은 시들시들하고 꽃은 작은 단추만 했습니다.
그러나 흙을 찾아 공중을 날던 수많은 씨앗 중에서 그래도 뿌릴 내릴 수 있는 한줌의 흙을 만난게 고맙다는 듯이 꽃은 샛노랗게 피어서 달빛 속에서 곱게 웃고 있었습니다. 도시로 부는 바람을 탄 민들레 씨앗들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한 딱딱한 땅을 만나 싹 트지 못하고 죽어 버렸으련만 단 하나의 민들레 씨앗은 옹색하나마 흙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 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게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나를 찾아 헤매다 돌아와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를 껴안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구나, 막내야. 만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나도 살아 있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는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 반가워서 말없이 집을 나간 잘못에 대해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다. 나 역시 엄마의 잘못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일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사람은 언제 살고 싶지 않아지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없어져 줬으면 할 때 살고 싶지가 않아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족들도 말이나 눈치로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지 않아 베란다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막아 주는 게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내가 겪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