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사려니 숲길과 섭지코지
(내맘대로 문학기행)
- 제주 사려니 숲길과 섭지코지
이번에 오랜 벗들과 제주도에 가서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하고 한라산을 등반하려 했는데 너무 눈이 많이 와 입산금지가 돼버렸습니다. 돌아갈 비행기도 결항 돼버렸고요.그래서 제주에 발이 묶여있을 때 예전에 제주에 왔을 때 써놓은 블로그 글과 그림이 생각나서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제주에 올 때는 유홍준 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권 제주 편"을 읽고 옵니다. 생각도 가물가물하고 제주에 대해 너무 모른 게 많았던 것 같아 다시 읽었습니다. 거기에 "사려니 숲길"이 한 꼭지로 나오는데, 인공적으로 꾸민 숲이 아닌 천연림이라 제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제가 본 건 입구 주변이었는데 전체를 보면 더 많은걸 볼 수 있나 봅니다. 유홍준교수는 제주에서 가장 감명받은 곳이 바로 사려니 숲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엔 없는 줄 알았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연림이라 그런가 봅니다.
(아이패드로 그려본 사려니 숲길)
그 책에서 도종환 시인의 시(詩)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의 느낌과 함께 아이패드로 숲길 입구도 그려보았습니다. 시 감상 한번 해보시죠.
사려니 숲길 (도종환 시인)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 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 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 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 끝
이 시를 읽다 보니 '좋을까'를 몇 번 반복하면서 사려니 숲길에 대한 시인의 애정을 가득 담아내고 있습니다.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우리를 부르는 산길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 길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숲길을 은유하여 그런 사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게다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걸 고맙게 받아들인다는 문장이 꼭 제 이야기같아서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는 제주도에 다녀오면 제주도 앓이를 하게 됩니다. 제주도 관련 소설들이 너무 아파서도 그렇고, 작년에 장박하면서 자전거 일주도 하고 걷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떠올라서도 그런것 같습니다.
그래서 문화유산 답사기 말고도 제주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발로 밟았던 곳들을 머리로 리뷰하게 됩니다.
성산봉 옆에 섭지코지라는 곳이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들렸던 곳인데 바다향기와 주변경치가 어우러져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네요.
(아이패드로 그려본 성산 주변 바다)
우리가 잘 아는 제주도에 3가지 많은 것(바람, 여자, 돌)과 없는 것(도둑, 담, 거지) 외에도 또 3가지 보물도 있다고 하네요. 그건 문화, 지형, 언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엔 특히 언어가 너무 아름다운데 고유한 이름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우리에겐 너무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섭지코지는 '좁은 곶'이라는 뜻이라네요.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비하면 무한하게 펼쳐진 바다와 수만 년 전 이루어졌을 대자연의 신비로움이 빚어낸 화산섬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에 비하면 잠깐 머물다 갈 하잘것없는 내 인생을 다시 돌이켜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날 섭지코지에서 찍었던 억새풀 사이 해를 끄적거림으로 그려보며 그리움의 흔적을 남겨봅니다.
(아이패드로 그려본 섭지코지 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