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은 먼 곳에 산다.

by 하늬바람

(내 맘대로 문학기행)


기린은 먼 곳에 산다.

- 시/ 이승희-


울고 나면 친절해진다.

수건이 그랬고, 책상이 그랬다.

그렇게 좀 죽어도 괜찮다.


어떤 눈물이 반쯤 올라오다 멈추어선 채

몇 개의 계절을 살더라도


그것은 아주 먼 고장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같은 것.


질문과 대답이 그렇게 여러 해를 떠돌거든

여름을 기다리자.


그래도 여름이 돌아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잊자.


되고 싶은 것 없이 너는 끝까지 너를 토하고

나는 나를 토하면 되는 일


..... 생략. 끝..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책에 나온 시입니다. 시어가 좀 어렵네요. 그래도 시나 노래, 소설, 영화라는 게 내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고, 은유적이고 모호한 게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감정이 그런 거겠죠.


저번에 청어라는 시에서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겨울이 왔고, 오늘 시는 여름을 기다리는데, 그것도 오지 않으면 잊어버리자고 하네요.


하여튼 계절은 정직하게 찾아오는데 기다리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이의 속마음은 알 길이 없죠..


이 시는 도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서정적인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사는 동물인 기린을 통해 외로움과 갈망을 표현합니다.


실컷 울고 난 뒤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친절해진다고 표현한 걸까요. 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안 좋습니다. 수건이나 책상이나 그 앞에 마주한 이도 그 울음을 받아주어야 되니 더 그렇습니다.


요즘 봄꽃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녁 산책길에 찍은 봄꽃나무입니다.

이 시를 읽고 보니 꽃들이 찬란하게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