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

by 하늬바람

(내 맘대로 문학기행)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



저자나 제목이나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그 유명한 ‘F 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이야기할까 합니다. 유명한만큼 여러 번역 책이 있는데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책으로 김영하 작가님이 번역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요즘 대이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속살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을 생각해 볼 만한 책으로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영어 원본과 번역본 - 셋트로 함께 구입가능)


피츠제랄드는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라 할 수 있는데 헤밍웨이와 함께 동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둘이 친하기도 하고 경쟁도 했다고 하죠.


이 분들이 그린 시대가 요즘의 미국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 시기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기운이 넘쳐흘러 미국이라는 신생국가가 패권국가로 가는 시대 1920년대 즈음입니다.


피츠제럴드는 막 성장하는 미국 상류사회의 쾌락과 공허함을, 헤밍웨이는 1차 대전 후 전쟁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또는 허무주의적으로 쓴 작가로 대변됩니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그의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 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랄드마저도 당대의 성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 구웠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향해 쏘아진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 이 소설을 번역한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는데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작품이 있고, 2001년 미라소르비노 주연작품과 2013년 레오나르로 디카프리오 주연의 작품이 있습니다. 언젠가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를 보았고 그 이후 문학동네 버전의 이 책을 다시 보았고 언젠가 다시 예전의 영화들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영화는 이 책의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원작을 화면으로 옮겨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장면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영상의 힘인가도 싶었으니까요.


1925년에 쓰인 이 작품은 미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지평을 열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정도 감흥보다는 퇴폐적인 문화의 형성과정을 보았습니다. 물론 인간의 욕망도 포함해서요.


통속적인 로맨스, 열망과 폭주, 부유한 인간들의 방탕한 생활상을 보게 되는데, 지고지순하게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모든 걸 바치는 남자의 순애보가 그나마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김영하의 해설을 보면서 더 많은 걸 알게 됩니다. 책 자체로서 감동이나 느낌을 주는 책도 있지만 그 소설의 뒷배경, 문화, 작가의 이야기 등을 알고 나면 그 책이 다시 보이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명작은 여러 번 봐야 되는가도 싶고, 문학비평이라는 직업이 필요하는가도 싶습니다.


우선 시대적 배경을 보면 이 소설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미국인 작가에 의해 쓰였습니다.

그 말은 미국이 1차 대전에 유럽강대국들의 전쟁에 최초로 참여했고, 아직은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극하기 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평자들이 주인공 개츠비라는 인물이 미국이라는 신생제국을 인격화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생과 성장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미국인 자신들의 모습을 이 소설 속 주인공들로 대치해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인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 속 외로운 여행객 같은 그림을 그리도 좋아하는 이유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호퍼 -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화려한 미래를 꿈꾸고 실제로 그러한 부를 거머쥐게 된 개츠비, 상류층 여자 데이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거는 남자.. 그건 바로 당시 신생강대국인 미국의 모습입니다.


개츠비는 부유한 귀족층으로부터 견제당하면서 배운 것도 없고 졸부 같은 존재라는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화려한 파티를 열고 돈을 써대면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그건 작가의 의도이건 아니건 유럽 강대국과 미국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번역한 작가의 해설을 보면 마음에 드는 대목이 많은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봅니다.

"데이지는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고 게츠비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을 서로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인 피츠제랄드 자신의 삶도 이 소설과 비슷합니다. 당시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이 작가는 소설 속 '데이지'같은 명문가의 딸을 사랑하나 파혼당합니다. 나중에서야 작가로 성공한 뒤에 그 여자와 결혼에 성공하지만 화려한 생활에 익숙한 부인과의 삶으로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 그리고 대학 때부터 알코올중독이었다는데 역시 술을 좋아하니 글이 술발을 받아 좋은 것 같네요.


작가의 삶도 이 소설처럼 표적을 빗나간 화살처럼 날아가다 끝내 어딘가에 명중한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우리의 삶도 모두 어디로 갈지 모르고 날아가는 화살이 아닐까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과녁이 있기는 한 걸까요.



미국의 지금 모습은 폭주하는 기관차 같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 미국은 자유와 자본, 지리적 요건, 그리고 시대적 상황과 개척정신 이 성장동력으로 작용하여 신대륙의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로 성장과 성공의 신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표적을 빗나간 화살과도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은 초강대국이기는 하지만 과녁을 잃은 화살처럼 과거를 향해, 또는 자신의 목적달성만을 위해 마구 질주하는 개츠비가 돼 가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왜 소설 제목의 수식어가 ‘위대한 great’ 인지 궁금하실 수 있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냥 대단하다는 의미이지 위대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는데 번역이 그리되었다는 설이 가장 이해가 갑니다.

MAGA(마가)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의 슬로건인데 여기서 보는 great 느낌이 납니다.


물론 한 여성만을 쫒았고 이상을 꿈꾸어서 위대하다는 설도 만만치 않습니다.


Ps2.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라는 작가의 글이 우리 인생 같다는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해야겠네요. 정해진 과녁으로 꼭 가지 않아도 그게 인생이고 행복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