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 금주(禁酒) 일기
나의 금주(禁酒) 일기 - 1주차
금연은 두달이 넘었고, 금주는 1주가 넘어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주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고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이 글을 읽으신다면 별 도움이 안될것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결되는 생각의 고리와 파편들로 이 글들이 채워지리란 생각은 해봅니다.
금연, 금주를 시작한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건 아닙니다. 통상 아프거나, 자신의 의지를 시험대에 올리는 절제의 과정인 경우가 대부분일거라 생각하는데 제 경우는 어느날 그냥입니다. 우연같은거라 생각됩니다.
30년 넘게 즐겨오면서 진지하게 끊겠다고 고민하기는 커녕 그 두가지에 대한 애찬론자였습니다. 누군가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면 술과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관이나 불만을 부풀리는거라 간주했고, 과학적 근거를 진지하게 제시하면 인체에 유의미하지 않은 숫자놀음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 생각이 바뀌었느냐 하면 저의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물론 인간이 어떤 결정을 할때 여러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되고, 주변의 상황적 요소도 있고 그간 축적된 경험칙과 생각들이 작용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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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는 일출 무렵에 강물을 보면서 자전거길로 출근할때 늘 설레임이 있습니다.
어제 이른 아침 평소처럼 자전거로 출근하던중에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택시를 불러 회사에 출근해야 했습니다.
자전거 타던중 펑크 난 일은 서너번 있었지만 출근중에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바닥에 못이 있었거나 돌출부위에 부딪혔거나 그곳을 지난건 아주 우연적인 사건입니다. 필연이라고 생각하기엔 과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필연적 운명을 더 믿곤합니다.
여기서 떠오른 책이 있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자크모노의 ‘우연과 필연’이 바로 그 책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다."
데모크리토스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우연'이라는 단어만큼이나 가볍게 느껴지도록 읽기 쉽게 쓰여져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필연'이란 단어만큼이나 무겁고 합목적성을 띄고 있는 책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우리는 굴러다니는 돌맹이와 같은 우연의 산물이거늘 우리 자신이 어떤 필연적인 이유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를, 우리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우리의 존재가 처움부터 정해진 것이기를 원한다’는겁니다.
우연과 필연을 어제 사건에 빗대보면 자전거가 그날 그 시간에 펑크난건 우연이지만, 언젠가는 고장나거나 펑크난다는건 엔트로피 법칙상 피할 수 없는 필연입니다.
자전거가 펑크나서 나무 그늘 아래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려 떨어집니다. 우연이죠. .
하지만 나무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는건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한 필연이기도 합니다.
자크모노의 과학적 진리를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과 필연은 문학작품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많이 작동됩니다.
우연과 필연 하면 떠오르는 아래 문장을 찾기위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가벼움을 견디다 못한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무거움에 직면한다."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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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도 ‘우연과 필연’하면 딱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예상치 못한 우연들이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는 필연으로 이어지는 형식입니다.
과거와 다가올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묵시록적 느낌이랄까요. .
책 꺼내 든 김에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 옮겨봅니다.
“자신이 인식한 세계가 바로 자신의 존재라는것을 알아차려야 해. 존재의 크기는 그가 인식하는 세계의 크기와 같아. 존재의 크기를 확장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 . 이질적인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여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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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끝나는 구조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독자는 우연으로 생각하며 읽다가 큰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결국은 필연적 결과였던것에 큰 감동을 얻게되니까요.
제 기억에 이런 플롯으로 떠오르는건 최근 읽은 한강 작가님의 초기작 ‘여수의 사랑’도 그렇고 공지영 작가님의 ‘높고 푸른 사다리’ 소설입니다.
근대문학이나 요즘 막장 드라마는 우연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개연성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좋은 작품은 우연과 필연의 큰 그림을 잘 그리는 거라 생각해봅니다. 그게 우리 인생과 닮았고, 삶의 진리에 근접하는거니까요. .
금주 1주차 이야기가 우연과 필연,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되버렸습니다.
저의 경우에 금연, 금주의 장점을 느끼는건 독서와 글쓰기 시간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맑은 정신일거구요. .
하지만 단점도 확실합니다. 글이나 생각에 술기운이 촉촉히 적신 감성이 조금 사라지고 메마르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랄까요.
1주차 금주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