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금주(禁酒) 일기
나의 금주(禁酒) 일기 - 8일째
( opening )
이 글의 목적은 금주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이 글을 읽으신다면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결되는 생각의 고리와 파편들로 이 글들이 채워지리란 생각은 해봅니다.
저번 글에서는 자전거 펑크 이야기와 우연과 필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였습니다. 금주(禁酒)로 인한 저의 글이 감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느낌 같은 느낌도 전했습니다.
(오프닝 끝)
여기까지 저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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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렸을 적 담배와 술은 어른의 영역이었습니다. 집이건 사무실이든 버스 속에서도 어디서나 흡연이 가능했고, 우리들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집으로 가져오는 심부름이 일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담배를 물고 사셨고, 퇴직하고 나서부터는 술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술과 담배는 그냥 아버지의 이미지였고, 어른의 상징으로 제 의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낚시를 가자고 해서 동생들과 따라간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도시 발달이 안되었을 때라 도시 주변에 강물이 흘렀고, 그런 개울가나 하천가에서 수영도 하고 낚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어느 여름날 한 낮을 보냈던 추억이 아버지와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평소에는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의 이미지와 달리 자연 속에서의 아버지는 그냥 한 가족의 무거운 짐을 잠시 벗어놓고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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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변산 쪽에 낚시와 해루질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낚시를 즐기지는 않지만 어찌어찌 가다 보니 바닷가에 서성이며 그 시절과 아버지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루질’은 썰물 때 바닷가에 물이 빠지면 미처 나가지 못한 조개류, 게, 해산물들을 줍는 형태의 채취를 이야기합니다.
‘무슨 질’이라고 명하는 것들이 도둑질, 해적질, 갑질, 이러한 단어들이니 나쁜 짓이라는 건데, 해루질 역시 바다로부터 훔쳐간다는 뜻일까 싶습니다. 물론 불법은 아닙니다.
노을이 지는 시간에 저는 해루질엔 자신이 없고 해서, 주변경치를 감상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늘 그렇겠지만 바다에서 보는 석양은 장엄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고흐가 제일 존경했던 밀레가 그린 ‘만종’ 과 시간대는 같지만, 밀레는 들판에 서있고 저는 바닷가라는 공간에 서있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밑에 있는 사진이 어제 제가 찍은 건데 제가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닷가의 만종’
그리고 고흐가 그린 수많은 별이 빛나는 밤들,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론강이 흐르고, 고흐가 그리고 또 그렸던 농민과 노동자의 삶이 자연이라는 화폭 속에 펼쳐지는 듯한 그런 분위기에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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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닷가에 서있으니 떠오른 책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단편 소설집입니다.
이분은 한 번밖에 주지 않는 프랑스 최고의 상을 가명으로 공모해서 두 번씩이나 수상한 대단한 작가입니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희망과 냉소, 가슴을 뒤흔드는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잡아들었고 거기에 나온 문장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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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라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이 새들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먼바다에 섬들이 있소, 조분석 섬들이오.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서 와서 죽소"
"왜요?"
"모르겠소. 갖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
"저 카페를 운영하고 있소. 여기 살아요"
그녀는 자기 발치께에 죽어있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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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어떤 이유가 꼭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대답 같기도 한 소설이었고, 저자인 로맹가리라는 위대한 작가를 알게 된 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다의 여운이 물씬 느껴지는 한 문장 더 옮겨봅니다.
" 바닷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물고기 떼가 해변을 지나는 모양이었다. 하늘은 온통 하얬고, 먼바다의 섬들은 햇빛에 노래지기 시작했고, 바다는 다양한 농담의 젖빛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문장만으로도 시각적으로 그 장면이 보이고, 바닷가의 쓸쓸한 감성이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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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禁酒) 이야기는 안 하고 아버지와 바다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지금은 안 계시지만 아버지의 바다 같은 격량의 세월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의 아버지 보다도 더 많은 저의 나이를 헤아려보며, 페루에서 날아왔을지도 모를 갈매기들과 함께 바라봅니다. 그 시절에도 이렇게 물들었을 노을과 석양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