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10일째) 금주(禁酒) 일기

by 하늬바람


나의 금주(禁酒) 일기 - 10일째


- 우물 안 개구리 -


( opening )


이 글의 목적은 금주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이 글을 읽으신다면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결되는 생각의 고리와 파편들로 이 글들이 채워지리란 생각은 해봅니다.


이 글의 첫 편에서 자전거 펑크와 더불어 우연과 필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였고, 두 번째 편에서는 아버지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아버지의 바다 같은 격량의 세월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의 아버지 보다도 더 많은 저의 나이를 헤아려보며, 페루에서 날아왔을지도 모를 갈매기들과 함께 먼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 시절에도 이렇게 물들었을 노을과 석양을,. . .


여기까지가 저번 이야기입니다.

. . . . ( 오프닝 끝 )


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처음 담배와 술을 배운 건 대학을 막 입학한 스무 살 때였습니다. 술, 담배를 한다는 건 어른이 됨으로써 그동안 금지된 것에 대한 자유를 누리는 절차 같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나 새로운 사람과 알게 된다든지, 지금보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간다던지 하는 일들에는 이런 신선함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술, 담배 역시 그러한 것들처럼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거의 한 번도 쉬지 않고 어른으로서 자유를 만끽해 왔습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시(詩)를 옮겨봅니다.


“우물 안 개구리”

- 박종화 -


어쩌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

알면서도 이 길 포기할 순 없었어.

넓은 하늘을 다 볼 순 없어도

눈에 어린것만이라도 껴안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커라.


니 말처럼 난 우물 안 개구리

그런 내가 싫어 기어 올라갔었어.

처음 만나는 벌판에 떠밀려

하늘은 이미 내 가슴에 사라지고 없었어.

난 슬펐어 정말


붉게 타버린 동그란 하늘 그 작은 하늘 보고 싶어

세상은 그래 다 그런단 것을 알아 버린 순간 우물 안이 좋아졌어

넓은 하늘을 다 볼 순 없어도

눈에 어린것만이라도 껴안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커라.


붉게 타버린 동그란 하늘, 그 작은 하늘 사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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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시인의 "우물 안 개구리" 라는 시입니다. 안치환 가수가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기도 했답니다.

통상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하면 자기 틀만 고집하고 시야와 식견이 좁은 사람, 크고 넓은 것을 보지 못하고 조그만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시(詩)에서는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어차피 개인이 담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세상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하니까 우물을 기어올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가 알아왔던 그리고 사랑했던 세상이 사라지고 맙니다.


새로운 세상이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깨달음과 발전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상실과 실망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넓은 하늘을 다 볼 순 없어도

눈에 어린것만이라도 껴안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커라."


여기서 '나의 삶은 커라' 이 대목이 마음에 많이 와닿습니다.

큰 삶은 무엇일까?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일까?


모두가 고민하는 것이고, 큰 세상을 보는 것, 위로 올라가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나의 조그만 하늘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 내 눈에 어리는 주변의 것들을 껴안는 게 자기에게는 더 큰 삶이라고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내가 가진 많은 것들, 평소에 소중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의 소중한 가치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우물 밖에 있는 다른 것들과 마주쳤을 때입니다.


바야흐로 이 무더운 여름이 아직도 극성이지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길에 잠자리와 귀뚜라미가 얼굴을 내미는 걸 보면 여름의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더 큰 세상을 꿈꾸고 많은 것을 배우고 얻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자기 안의 것을 먼저 충실히 채우고 바로 옆 자기 주변에 있는 것들을 껴안을 수 있는 자세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이 시를 통해 느껴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변증법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되겠네요.


오늘로 술을 안 마신 지 열흘째.

저는 금주의 새 세상을 만나고 있는걸까요. 내 인생에 술이 없던 옛 시절로 돌아간 걸까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