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와 빗소리

(14일째) 금주(禁酒) 일기

by 하늬바람


나의 금주(禁酒) 일기 - 14일째

- 소나기와 빗소리 -


( opening )

이 글의 목적은 금주과정을 기록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이 글을 읽으신다면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습니다.물론 그 과정에서 연결되는 생각의 고리와 파편들로 이 글들이 채워지리란 생각은 해봅니다.
첫 번째 편. 우연과 필연
두 번째 편. 아버지와 바다
세 번째 편. 우물 안 개구리
네 번째 편. 속력과 균형
지금까지 총 4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두 바퀴인 자전거가 떨어지거나 넘어지지 않고 나아갈 수 이유는 속력 때문입니다.움직이는 물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도 바로 속력입니다. 일정한 속력이 나를 지탱해 줍니다.

여기까지가 저번 이야기입니다.

. . . . ( 오프닝 끝 )


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는 저녁입니다.

어렸을 적엔 빗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는데 요즘엔 창문의 방음이 잘되서인지 집안에 있으면 그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잠깐 산책을 나왔다가 홀딱 젖었는데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어느 시인가 노래에서인가 ‘인생은 우산 없이 마주치는 소나기와 같다.’는 그런 비슷한 문구를 만난적이 있는데 그 느낌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빗소리를 집안에서 귀로만 듣는 것과 온몸으로 맞으면서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입니다. 마치 TV로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과 직접 그 연주 현장에서 보면서 듣는 것과 다른 것처럼 말이죠.


지금처럼 차가 많지 않았던 옛 시절에는 비가 오면 뛰어다니면서 온몸이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럼 왠지 저도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 처마도 양철 함석이거나 스레트로 돼있어서 빗방울이 튀는 소리가 아름답게 귓가에 속삭이기도 하고, 거센 비일 때는 세차게 울려 퍼지기도 했습니다.


길가의 풀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풀잎의 소리를 들려주고, 도로의 빗물 위를 달리는 차에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싸늘하지만 상쾌합니다.

이렇듯 서로가 만나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그 소리는 아름다운 화음일 수도 있고 불협화음이거나 불규칙한 재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현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단연 "타자"라고들 말합니다.


결국 나를 결정짓는 것은 타자이고, 나라는 주체는 남에게는 타자가 됩니다. 실존주의자들 주장에 따르면 나와 타자와의 관계는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미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와 미래와의 관계는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에서 결정지어지기 때문이겠죠. 어느 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한편으로는 설레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타자로 인해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지금 내리는 비는 저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사물과 자연현상도 저의 입장에선 타자인 셈이죠.. 이런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어봅니다.

. . .

아 참!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한 건 자신을 구속하고 결정짓게 되기 때문이지, 진짜 지옥이란 뜻은 아닙니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타자를 이야기했으니 그와 연결되는 주제 '사랑'에 대해 감성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책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에는 4단계가 있는데

1 단계 : 사랑받고 싶은 단계

2 단계 : 사랑할 수 있는 단계

3 단계 : 나를 사랑하게 되는 단계

4 단계 : 보편적인 사랑의 단계

제 생각으로는 1 단계는 유아기적 사랑이고, 2 단계는 청소년부터 어른이 돼 가는 사랑이고, 3단계는 나를 알게 되는 성숙한 철학적 사랑입니다. 가장 높은 4단계는 인류애적 사랑이나, 신앙적 사랑으로 생각됩니다.

2단계까지는 타자와 관계가 되고, 3단계부터는 타자를 넘어선 개념으로 생각됩니다.

남을 사랑하는 건 실은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 남을 사랑함으로써 그에게 비친 나의 존재를 깨달아간다는 사실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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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사랑 후에 오는 것이 뭐냐고 물은다면 나는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타인을 사랑함으로 인해 타인의 거울에 비친 나라는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거니까요.

보통의 경우 타인을 통해 나를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가 일정한 정도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내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 보일 수 없을뿐더러, 남이 나를 그렇게 알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그를 통해 나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고 내 존재의 깊은 울림을 알게 됩니다.

사랑 후에 성장하던가, 성숙한다던가, 혼자 좋아힌다던가, 아니면 그 사랑이 설령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바로 사랑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통해 나의 존재를 비로서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벗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혼술하면서 빗소리 듣는 즐거움이 컸는데 이제 그 즐거움을 당분간(?) 또는 한참을 보류해야겠습니다.

금주로 인한 이런 아쉬움이 빗물처럼 제 마음을 흘러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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