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째) 금주(禁酒) 일기
나의 금주(禁酒) 일기 - 16일째
( opening )
첫 번째 편. 우연과 필연
두 번째 편. 아버지와 바다
세 번째 편. 우물 안 개구리
네 번째 편. 속력과 균형
다섯 번째. 소나기와 빗소리
지금까지 이렇게 5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길가의 풀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풀잎의 소리를 들려주고, 도로의 빗물 위를 달리는 차에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싸늘하지만 상쾌합니다.
혼술 하면서 빗소리 듣는 즐거움이 컸는데 이제 그 즐거움을 당분간(?) 또는 한참 보류해야겠습니다.
금주로 인한 이런 아쉬움이 빗물처럼 제 마음을 흘러 지나갑니다.
여기까지가 저번 이야기입니다.
.... ( 오프닝 끝 )
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문득 문학이란, 인간이란 등등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았습니다.
내 방식대로 세상을 나누어보면 크게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3가지 관계가 발생합니다.
‘자연과 자연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이렇게 말입니다.
그중 자연과 자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은 다큐멘터리가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세계는 이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다큐가 모든 걸 다 보여주지 못합니다. 인간은 마음속 생각과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건 오히려 허구의 세계인 소설, 드라마, 영화, 연극 등이 더 우리에게 적합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다큐는 사람 속 마음을 다 보여주지 못하지만, 소설 속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3인칭 관찰차 시점, 전지적 작가시점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문학이라는 게 그래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마음속이나 남의 마음속이나 이럴 거라는 상상을 펴볼 수 있으니까요..
동양에서는 인간(人間), 시간 (時間), 공간 (空間) 모두 사이 간이라는 한자가 들어갑니다.
세상 모든 게 관계 속에 있다고 봅니다.
( 초서로 쓴 ‘사이 간’ 글자 )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거고, 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 존재하는 거고, 공간은 비어있는 것들 사이에 있는 것들이라는 거죠. 순간 (瞬間)이라는 단어마저도 ‘사이 간’을 넣어서 이 찰나의 시간마저도 사이 속에 존재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서양은 존재론적 세계관이고, 동양은 관계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독립적 정체성과 그 안의 본질을 찾는 게 존재론이라면 관계론은 말 그대로 관계 속에서 찾는 겁니다.
책들은, 그중에서도 문학은 주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내가 잘 알지 못하던 것, 모호한 인간의 감성, 심리, 등등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주로 다룹니다. 저도 그래서 책에 끌리고 소설에 끌리고 영화에 끌리는가 봅니다. 어렸을 적 만화에 끌려 상상의 세계를 살았고, 문학전집을 탐독하고, 아무거라도 활자가 있는 거라면 좋아했던 이유일 겁니다.
제가 아는 인간의 관계는 굉장히 취약합니다.
실제도 그렇고, 조금 더 극적상황을 만들어내는 소설 속 관계를 들여다보면 늘 불안하고 위태롭기만 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
사랑 앞에 흔들리고, 분노와 질투에 시달리고, 경쟁에 내던져지고, 권력과 출세를 위해 배반하고 모함하고 살인하고..
영원한 사랑 앞에 모든 것이 평온하였다는 식의 이야기는 동화 속이나 로맨스 판타지에나 나오는 식상한 이야기일 뿐이죠.
공학적으로 도로, 교량, 건물 같은 구조물은 복잡해 보여도 인간관계에 비하면 쉬운 편입니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다니는 도로 같은 구조물이나 인간이 거주하는 도시 속 건물 같은 모든 것들은 굉장히 튼튼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스페인 세비아에서 찍은 사진.
메트로폴 파라솔 (Metropol Parasol) 또는 세비야의 버섯 (Las Setas de Sevilla)- 목조 교량 )
그래서 기초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암반에 기초를 앉히고 교량을 놓거나, 암반을 뚫어 터널을 만듭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게 말이죠. 그래서 큰 지진이 오거나 많은 비가 와도 잘 설계하고 건설하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도 기초가 튼튼하면 잘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인공적인 구조물처럼 기초에서부터 상부구조로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만들어져 나갑니다. 서로의 감정과 의식이 교류되어 관계가 돈독해지는 과정자체가 그러하니까요.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인간관계는 만들다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나마 서로를 도와주고 힘들 땐 기대고 함께 가야 버티고 갈 수 있는 게 인생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해결해 나아가야 할 몫들이 많아져갑니다.
그리고 가끔 외로울 땐 술도 좋은 친구가 되기도합니다. 저에게도 오랜 기간 벗이었지만 지금은 잠시 술 없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게다가 금주 이후 아직까지는 술을 찾을 만큼 외롭진 않네요...
그래도 문학과 예술, 술 같은 벗이 제 옆에 오래오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 @ 술도 안 마셨는데 금단현상 때 문지 이은 지 좀 횡설수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