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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째) 금주(禁酒) 일기

by 하늬바람

나의 금주(禁酒) 일기 - 47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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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저번 편 나의 금주(禁酒) 일기 43일째는 ‘별이 빛나는 일요일 밤’ 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자라나는 생각의 머리카락은 정신없이 무성해집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잘 다듬어진 생각은 나를 차분하게 하기도 하지만, 남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러면서 더 멋있어지고, 성숙해지는 거라 생각됩니다.

금주를 하는 것도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듯이 나의 몸과 마음가짐을 한 번씩 조절해 가는 과정일 겁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하루의 새벽은 하나의 인생이 열리는 순간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살이 에겐 정말 그렇겠죠. 실제로는 하루살이도 며칠은 산다고 합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사는 저는 하루를 더 소중하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엔 아침에 눈뜨고 나면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보이는 모든 게 어마어마하게 커 보였습니다.

나중에 성장한 다음에 보면 학교 운동장이며, 살던 집이며 어릴 적엔 왜 그렇게 크다고 느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마당에 쌓여있던 소주 댓 병은 얼마나 크고 많던지, 저걸 사람이 하루 만에 마신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댓 병이 제 키보다 높이 쌓여 산을 이루게 되면 고물상에 팔러 가곤 했습니다.

제가 어른이 돼서 지금까지 마신 술병도 이에 못지않을 겁니다. 그 술병만큼 인생경험과 지혜도 쌓여있음 좋겠지만 자신할 순 없습니다.


어릴 적엔 처음보는 것, 낯선 것도 많아서인지 새로 시작되는 하루가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 어렸을 적 하루 하루가 모여 오늘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그때 즈음 어머니가 사주신 세계명작집에 있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첫 책이 톨스토이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부활의 주인공 카츄사는 제 머릿속에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커가면서 제대로 번역된 다른 출판사 책으로 몇 번 읽었습니다만 그 어떤 책도 처음만 못했습니다.

처음 읽었을 당시 번역이라는게 중역이라고 해서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된 책이다보니 오역도 많고 앞뒤가 안맞던 문장도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음에 읽은 번역본은 처음 읽었을때와 달리 이해하는 깊이와 폭은 달라질 지언정 그 감동만큼은.대체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사무실 도서관을 새로 준비하면서 민음사에서 번역된 책으로 세계명작을 많이 주문했는데, 다시 카츄사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중입니다.



드디어 건물안과 옥상에 꾸미던 도서관이 단장을 마치고 열림행사를 소소하게 했습니다. 저는 숟가락 하나 얹은 정도인데 함께했던 분이 얼마나 열심이시던지, 많은 걸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이 고리타분하지 않고 이렇게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되었네요. 요즘말로 힙하고 핫하게, 세련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기획하시고 조그만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쓰신 분과 궂은 일 다하신 실무자님, 책 분류한 인턴들, 그리고 관련 소품, 물건 제작하고 설치하신 분들 덕분입니다.

책갈피라는 이름도 마음에 꼭 듭니다. 오늘 아침도 출근길에 야외 도서관으로 먼저 와서 인생의 책갈피 하나 꽂아둡니다.


오늘 제 삶에 책갈피가 꽂힌 페이지는 개장한 도서관의 ‘부활’과 톨스토이와 카츄사의 ‘부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책갈피에는 제 마음의 ‘부활’ 까지 함께 담아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