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독자 (月下獨自)

(51일째) 슬기로운 금주(禁酒)생활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나의 금주(禁酒) 일기 49일째는 ‘책갈피에서 라이딩까지’ 였습니다

이번에 도서관 준비하면서 설치된 조그만 소품들이지만 세밀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이 있습니다. 대충 보면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해내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글귀는 도서관에 새로 구입해 비치해 놓은 ‘마담 보봐리’ 세계명작 소설에서 유래한 유명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꼼꼼하게 기획하시고 준비하신 분들 덕분에 책 보는 재미와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51일째

- 월하독자 (月下獨自)



우선 ‘나의 금주일기’ 가 50일째를 넘어섰습니다. 횟수도 늘고 해서 브런치에서 제공해 주는 서비스인 브런치 매거진, 브런치 북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금주 일기’ 저번 편까지 시즌 1 브런치 매거진에 담고, 오늘 편부터는 시즌2에 담으려고 합니다.


오후 늦게서야 바람도 쐴 겸 자전거를 끌고 나왔습니다. 먹구름에 바람이 불어와서 시원하긴 한데 비가 와서 한가위 보름달이 얼굴을 못 내밀까 싶습니다.

여행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과 운동으로 타는 것, 그리고 일상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주로 출퇴근으로 타고, 주말에 운동삼아 탑니다. 작년에는 시간이 좀 있어 제주도 살기 하면서 자전거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은 다른 모든 여행처럼 낯설고 두렵기도 하지만, 새롭고 흥분되고 다른 곳에서 자신을 돌이켜 볼 시간도 됩니다.

이에 비해 일상이나 운동용 라이딩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루틴 한 환경에서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정 행동을 습관화하는 루틴은 나름 장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마저 루틴해지면 문제가 있습니다.

출퇴근이나 운동으로 다니는 라이딩은 아무래도 자전거길이라는 환경이 루틴 합니다. 한 번씩은 다른 길로 가보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길도 늘 같지 않다는 건 라이딩 중에 주변을 돌아다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느낀 건데 같은 자전거 길이라도 늘 조금씩은 달라집니다. 주변의 나무에 단풍이 물들어가고 갈대와 억새가 바람에 춤을 추고 있고, 계속된 비로 인해 자전거길 주변 강물은 교량 기둥들과 돌들을 세차게 치고 흘러내려갑니다. 저번 수해에 파손된 길도 보수돼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옷이 달라져있습니다. 긴팔에 긴바지, 조금은 두터워진 옷매무새가 가을임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된 환경을 느끼게 되면 나의 루틴 한 생각도 변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부는 바람에서 내 숨소리까지, 가을 색으로부터 어두워져가는 저녁의 색까지 내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그것들이 꼬리를 물면서 조금씩 생각이 확장되어 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어스름해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보름인데 달을 볼 수 있으려나요.


술을 참은 지 51일, 즉 반백일이 넘어섰지만 이런 날엔 이태백의 ‘월하독작’ 시를 읊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월하독작(月下獨酌)

<달 아래서 혼자 술을 마시다>


이백(李白) - 일명 이태백


꽃 아래에서 한 병 술 홀로 마시며

서로 친한 이 없다오.

잔을 들어 밝은 달 맞이하니,

그림자를 대하여 세 사람 이루네.


달은 이미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한갓 내 몸 따르누나.

잠시 달과 그림자 짝하니

행락은 모름지기 봄철에 해야 하네.


내가 노래하면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어지럽게 흔들리네.

깨었을 때에는 함께 사귀고 즐기나

취한 뒤에는 각기 나뉘어 흩어진다오.

무정한 놀이 길이 맺어

멀리 은하수 두고 서로 기약하노라.

... 끝. .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제 글의 제목이 이태백의 시 월하독작 (月下獨酌)이 아니고 월하독자 (月下獨自) 입니다. 술잔 작(酌)자 대신 자전거의 자(自)를 써넣아서 달 아래 혼자 자전거를 탄다는 의미로 만든 제목입니다.


여기서 ‘술잔 작(酌)’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단어중 이 ‘술잔 작’ 자가 꽤나 많이 사용되고 있답니다. ‘술 부을 작’이라고도 합니다.

수작(酬酌)'은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말인데 주막에서 주모에게 수작을 권하다가 ‘이게 어디서 수작질이여’ 하는 말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작(斟酌)'은 우리나라 호리병이나 술잔이 그 속을 알기 힘들어 술의 양을 헤아려 따르는 행위에서 유래했으며, '참작(參酌)'은 상대방의 주량 등을 고려하여 술을 적절히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조어로 ‘정상을 참작하여. . ‘ 이렇게 좋은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의 술문화는 남을 배려하고, 그 문화를 일상에도 확대한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한 술문화를 즐기시는 분들은 술잔 작의 의미를 꼭 아셔야 되겠지요. 이렇게 우리는 삶과 뗄 수 없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고, 짐작과 참작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술자리에서 강요가 아닌 배려를 하고 흐트러짐이 아닌 예를 지키는걸 중요시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했더니 옆에 분이 ‘술 좀 작작 마셔라’ 할 때도 그 술잔 작 이냐고 우스개로 물어보더군요. 그때 작작은 적당히 하라는 다른 뜻의 부사랍니다.


저는 이태백의 시가 너무나 좋습니다. 이 시뿐만 아니라 그 분의 많은 시가 술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것입니다. 시의 형식도 자유롭고, 내용도 마음가는대로 이지만 인생과 시대를 풍류하는 미적 완성도가 높습니다. 마지막엔 술한잔 하고 강에 뜬 달을 잡으러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까지 있을정도입니다.

저는 타고난 게 이태백 과인데 요즘 술 없이 글을 쓰다보니 글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그래서 월하독자, 달 아래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이태백을 그리며 그나마 감성을 키워봅니다.

그리고 이태백처럼 은하수를 두고 무언가를 기약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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