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새 슬피 우니

(52일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나의 금주(禁酒) 일기 51일째는 ‘월하독자’ 였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된 환경을 느끼게 되면 나의 루틴 한 생각도 변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부는 바람에서 내 숨소리까지, 가을 색으로부터 어두워져 가는 저녁의 색까지 내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그것들이 꼬리를 물면서 조금씩 생각이 확장되어 갑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52일째

- 으악새 슬피 우니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저희 아버지가 자주 부르던 ‘짝사랑’ 이라는 노래입니다. 저는 이때만 해도 으악새라는 새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커서 알고 보니 억새풀의 경기도 방언이 으악새 라고 합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계절의 변화를 더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으악새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오니 여기저기 억새와 갈대가 슬피 울기도 하고 바람에 실려 하늘거리기도 합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둘 다 벼과 식물인데 억새는 산으로 가고 갈대는 물가로 가서 생명을 이어갔나 봅니다. 그렇지만 물가에 억새가 있기도 하고, 산이나 들에 갈대가 보이기도 합니다. 바야흐로 이 억새와 갈대의 계절입니다.


오늘도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읽으려고 주변 마실을 나왔다가 갈대가 저의 마음을 흔들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시를 떠올려봅니다.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끝-----


조금전에는 가는 비가 살짝이 갈대를 적시었는데 이제는 시나브로 저녁이 돼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스산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명언이나

'여자의 마음은 갈대' 라는 통속적인 문구는

갈대의 약함과 흔들림을 잘 표현해 주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그 흔들림의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적인데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표현들입니다.

파스칼은‘생각'을 그 원인으로 보았고, 여자는 '마음’ 이 원인이니 말입니다. 물론 파스칼은 인간이 갈대처럼 나약한 존재이지만 그 안에 있는 생각의 위대함을 표현하고자 한 명언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위대한 수학자이자 철학자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 라는것과 파스칼의 정리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국제적으로 공용되는 힘단위에 그의 이름을 부여했으니 ‘단위면적당 작용하는 힘’을 Pascal 이라 합니다. 즉, 1Pascal = N / m^2 입니다. 과학이나 공학하시는 분들은 늘 보는 기호입니다. 그런데 바람의 힘, 풍력은 이 단위로 표현할 수 있는데 갈대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0 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장력은 있는데 여기서는 이 정도만 하고, 파스칼과 갈대의 재미있는 관계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파스칼은 그냥 갈대가 아닌 ‘생각하는 갈대’ 의 응력은 어느정도로 보았을까 궁금하긴 합니다.


그리고 신경림 시인은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울음’ 이라고 이야기하니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인 요인이 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내적인 갈등이나 원인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제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구조적인 역학관계를 많이 다루는데 외부의 힘을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부족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이 시의 마지막 대목을 다시 읽어봅니다.

사실 갈대는 흔들리면서 바람을 이겨내도록 잘 적응된 아주 강한 풀이라고 보면,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속으로 울며 흔들리며 외부에 맞게 내부가 함께 적응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기서 김수영 시인의 ‘풀’이란 시도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시중 일부만 발췌합니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 생략. .


현대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고 사회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던 김수영 시인이라 이 문장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고 그냥 갈대가 생각났습니다. 저의 과도한 생각이지만 갈대는 바람과 맞써지 않고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눕는것 처럼 바람을 피합니다. 그러니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신경림 시인, 김수영 시인의 시구가 떠오르는 가을 저녁. 저의 흔들림을 알아챘는지 사방천지에 으악새가 슬피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