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째) 금주(禁酒) 일기
나의 금주(禁酒) 일기 - 30일째
( opening )
저번 편 25일째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이었습니다.
술 한잔에는 그 자체의 무게보다 그 술잔에 담겨있는 삶의 애환과 이야기들, 정겨운 벗들의 삶의 무게까지 담겨 한없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저는 음주로도 세상을 배우지만 요즘은 금주로 인해 배우는 게 많은 시간입니다.
( opening 끝 )
오늘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금주를 시작할 때는 며칠을 갈지 정하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우선 한 달간은 해보겠다는 의지였는데 벌써 30 일이 되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길을 어느 날 문득 들어서서 여기까지 오게 된 느낌입니다. 제가 살펴봐야 할 일도 생겼고 해서 당분간 금주를 실천한 계기가 생긴데다가 우연찮게 회사에서 진행하는 금연 클리닉에 가입해서 금연이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금주까지 도전해 본 게 연쇄작용과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심하고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그게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왔는데 앞으로가 더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시(詩) 한편 올립니다.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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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주 읽는 시입니다.
묘하게 이 시를 금연이나 금주하고 연결해 생각해 보면 그럴싸한 문장들로 이해됩니다.
이 시구에서 모든 사랑하는게 그렇듯이 금연, 금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고창 선운사는 꽃과 나무가 많은 사찰입니다. 이른 봄에는 동백꽃이 만발하고, 가을이 되면 꽃무릇(상사화)과 단풍나무가 알록달록 산사를 물들입니다.
위 시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집에 실린 시(詩)인데요, 시인의 감성과 시대 공감이 어우러져 제가 어렸던 시절에 많은 인기를 얻고 공전의 히트를 쳤던 시집이었답니다.
시인은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진 후 선운사에 와서 꽃이 피고 지는데 자신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시를 읽어보면 맨 첫 줄과 마지막 줄에 나온 시구가 대칭을 이루면서도, 말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연결되어 가슴에 여운을 남깁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새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꽃이 피고 질 때 떠올리곤 합니다.
꽃이 피는 마냥 사람의 마음도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떠날 때는 아주 쉽게 떠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리 쉽겠습니까.
마음은 떠나도 잊히기엔 한참이 걸립니다.
꽃이 이럴진대 마음에 맺힌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 아이패드로 그려본 장미꽃 스케치 )
고창 선운사는 삼국시대 백제때 만들어진 절입니다. 몇 년 전에 템플 스테이를 했었는데 그때 배운 몇 가지 사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선운사는 오래된 역사도 역사지만 다른 절과 다르게 ‘지장보살’을 별도로 모시고 있는 독특한 절입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고 합니다.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은 이미 입멸하고 미래불인 미륵불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보살이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남아있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자진해서 지옥에 들어가 지옥에서 살고 있는 부처라고 합니다.
위 시에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해 보면, 사람이 부처가 되기는 어려워도 나락에 떨어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나락에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어도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는 한참 걸릴 뿐만 아니라 극복이 어렵기도 합니다. 그게 지장보살이 필요한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우리 삶이 그러합니다. 마음먹기 따라 천국이나 극락이 되기도 하고 순간 나락에 빠지기도 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내 인생이니까요.
저의 음주, 금주 이런 것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앞으로도 나의 선택과 생활 속에서 계속 일어날 일이니 부디 조화롭게 잘 지내보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