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샤갈

(23일째) 금주(禁酒) 일기

by 하늬바람


나의 금주(禁酒) 일기 - 23일째


- 비와 샤갈 -


(opening)

저번 이야기는 국화였습니다.


그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어제는 천둥과 먹구름이 그렇게 울어대고, 소쩍새도 그렇게 울어댔나 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국화는 검정색 옷들 사이로 그렇게 고요히 존재와 부재 사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 . . opening 끝


오늘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자전거로 퇴근하는 길에 비를 만났습니다. 많은 비는 아니고 약간 젖을 정도인데 우중 라이딩은 기분을 좋게 합니다. 빗속을 가르며 달리다 보니 감성과 낭만이 충만해졌고, 술 한잔 생각날 법도 한데 금주가 20일이 넘어가니 그리 간절하진 않습니다.


비 오는 날 술 한잔 생각하니 샤갈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샤갈 그림을 좋아해서 배경화면으로도 깔아놓곤 합니다.

샤갈의 가장 대표작인 ‘나와 마을’ 이라는 작품입니다.

환상적이고 어린 시절 추억을 꿈처럼 표현한 것 같은 낭만이 물씬 묻어납니다. 마치 동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오늘같이 비 오는 날 찾아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샤갈. 와인잔을 든 두 사람의 초상화)


비 오는 날 저녁에 샤갈은 자신과 사랑하는 연인의 초상화를 한 장면에 같이 그렸습니다. 초상화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형식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표현이며 색감이며 샤갈만의 독특함이 묻어납니다.

두 사람은 와인잔을 들고 나풀거리며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가난한 화가 샤갈과 부유한 집안의 딸과의 사랑은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금지하거나 막는 게 존재하면,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또한 존재합니다.

그 욕망은 두 가지 면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생기는 비극이고,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랍니다. 그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입니다.

(오스카 와인드 삶에 대한 책)


저는 오늘 어떤 욕망을 꿈꾸고 있는 걸까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어떤 욕망을 꿈꾸어도 결국 두 비극 사이를 오가는 걸까요. 그렇다면 욕망으로 인한 두 비극은 어떤 걸까요?

상황에 빗대보자면 술을 마시지 못해도 비극이지만, 술을 맘껏 마셔도 비극..

부를 얻지 못했을 때도 비극이지만, 부를 얻었을 때 생기는 또 다른 비극은 많이 떠오릅니다.

사랑을 얻지 못할 때도 비극이지만 사랑을 얻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계속되는 집착으로 인한 괴로움, 또는 그 사랑이 식었을 때 생기는 비극(? )

권력을 쟁취하지 못했을 때도 비극이지만, 또한 쟁취했을 때도 그걸 유지해야 되고 더 많고 더 높은 것을 원하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인한 비극,

이런 식으로 욕망은 반대급부가 늘 따라다닌다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금주를 하고 있지만 마시고 싶다는 욕망만큼 참고자하는 욕망도 만만치 않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느끼게 됩니다. 그리 어렵지 않은 게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예전에는 술이 저의 마음과 육신을 축축이 적셔주었는데, 오늘은 비가 술처럼 저를 충분히 적셔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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