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 <오 , 사랑>에 대한 짧은 감상
미세먼지로 자욱한, 춥지도 덥지도 않은 하노이의 11월이지만, 가을이 끝나기 전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기에 서둘러 노트북 전원을 켠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 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 듯
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
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조차
하얗게, 앙상하게 변해도
들어줘, 이렇게, 끈질기게, 선명하게,
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 따라,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나를 찾아,
네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봄, 겨울, 꽃밭, 눈발의 대조를 통해 이역만리 먼 고국에 있는 그리운 존재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는, 문학작품으로서의 詩의 형식을 갖춰 쓰려는 루시드 폴의 의지가 느껴진다. (마종기 시인과의 서신을 주고받은 책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책을 보면, 이 시절 루시드 폴이 화두가 시 같은 노랫말, 노랫말 같은 시를 쓰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고 말이다. )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날개가 없어도/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돛대가 없어도/나는 바다를 가르네.
완벽한 반복과 대구를 이루는 수사. 시원하면서도 童詩에 어울리는 시어라 차분한 전체 노랫말의 분위기를 한번 환기시켜준다. 자칫 튀는 부분 같기도 하지만 조윤석(루시드 폴)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덤덤한 멜로디, 따뜻한 나일론 줄의 기타 반주가 튀는 가사의 톤을 다운시켜 전체적인 노랫말의 분위기를 차분하고 부드럽게 조성한다.
그는 추운 겨울, 다시 만날 봄의 첫날을 꿈꾸며 꽃밭을 일군다.
눈발이 몰아치고 해조차 나지 않는 한 겨울에도 조용히 생명을 품고 꽃을 피울 봄을 기다리는 꽃나무처럼, 춥고 고독한 겨울과도 같은 이별의 기간 동안 타국에서도 끈질기고도 선명하게 사랑하는 이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키워내며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루시드 폴의 책에서 노랫말을 쓴 배경을 밝힌 부분을 읽은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스위스에 유학 와서 공부 중이었고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이 곡을 썼다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것들과 이별한 쓸쓸한 현재를 비관하기거나 체념하기보다, 꽃밭을 일구듯, 그리운 것들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키워나가는 조윤석의 따뜻하고 성실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노랫말은, 네가 틔운 싹을 보렴, / 오, 사랑이다.
‘내’가 틔운 싹이 아니라, ‘네’가 틔운 싹이라는 것.
그 싹은 ‘내’가 자애롭고 사랑이 많고 인내한 결과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의 아름다움, 고귀함, 사랑스러움으로 인해 틔어진 싹이라는 것, 너의 너다움으로 인해 몰아치는 눈발과 미약한 햇빛 속에서도 내가 꽃밭을 일굴 수 있었다는 것. 그 모든 공을 ‘너’에게로 돌리고 있는 이 부분에서 그의 겸손함과 더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한국을 떠난 지 2년이 되어 한국의 모든 것이 그리운 지금 이 곡이 유독 더 와닿기도 하겠으나 한국에 있을 때부터도 이 곡은 항상 내가 떠나온, 잃어버린, 그리운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젊음이자 추억이었고, 미처 가지지 못한 것, 끊어진 인연이었으며, 심지어 방학이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남극의 폭풍과도 같이 매서운 사춘기 J의 히스테리에 괴로워했다. 사실 그 원인을 제공(걱정, 불안, 간섭, 독설) 했다는 사실이 더 힘들었다.
‘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조차 하얗게, 앙상하게 변’하는, 사춘기라는 ‘겨울’을 지나고 있는 이 순간에, 봄을 그리며 꽃밭을 일굴 수 있는 원동력이 나의 인격과 됨됨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의 J이기에 틔울 수 있는 싹이겠지.
시속 180km의 강풍 속 허들링을 통해 새끼를 지켜내는 남극의 황제펭귄처럼, 차갑고 고독한 스위스 겨우내 꽃밭을 일구는 유학생 조윤석처럼, 사춘기 J와의 봄을 꿈꾸며 그녀를 더더욱 사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