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후회는 늘 늦게 오고, 불안은 늘 먼저 온다. 어제의 나는 왜 그랬을까 돌아보며 마음 한편이 저리고, 내일의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며 마음 한 구석을 조여 온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담담한 사람이라 해도, 무덤덤한 얼굴 뒤에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향한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려 애쓴다. 나만의 법칙, 나만의 철학, 나만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 세상이 흔들릴 때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 같은 것. 그런 철학이 삶에 필요하다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절감하게 된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평생을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오신 분이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내 노력으로 되는 일은 정말 작았어요. 오히려 우연히 찾아온 일들이 제 삶을 증명해 줬지요. 다만, 그 우연을 받아들일 준비는 제 몫이었어요.” 이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세상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한 대로 풀리는 인생이란 없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은 그 우연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손님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준비는 우리의 의지로 가능한 영역이고, 우연은 운명과도 같은 외부의 선물이다. 그 둘이 만나야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우연을 준비하는 자세’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고, 알아봤다 해도 잡지 못한다. 반면 꾸준히 배워온 사람, 내면을 단단히 다듬어온 사람, 때로는 조용히 자신을 응시해 온 사람은 그 우연 앞에서 당당하다. 비로소 ‘그 순간’이 나의 순간이 된다.
하지만 이 준비는 단순한 스펙 쌓기나 결과 지향적 자기 계발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는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 질문들 속에서 나만의 철학이 자라난다.
삶의 철학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높은 지식이나 복잡한 언어가 아닌, 자신만의 생각과 삶의 태도, 선택의 기준이다.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려고 해.”,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 가치를 지켜.” 그런 마음의 근육들이 쌓여 나만의 철학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길을 걷는다. 누군가는 빠르게 질주하고, 누군가는 천천히 돌아간다. 어떤 이는 늘 조심스럽고, 또 다른 이는 거침없이 도전한다. 방식은 달라도,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가’다.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게 된다. 하지만 나만의 방향이 있다면 그 길이 멀더라도,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나에게 이르는 길이다.
모든 삶은 하나의 작품이다. 완벽할 필요도, 거창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안에 나의 색이 묻어 있어야 한다. 나만의 결, 나만의 온도, 나만의 무늬. 그것이 바로 삶의 철학이요 방식이다. 그러니 오늘도,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며 묻는다. “나는 어떤 철학으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나는 우연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성실히 답하며 하루를 살아간다면, 언젠가 찾아올 ‘그 순간’을 가장 나답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