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양자컴퓨터가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이 질문은 더 이상 공상과학의 소재로만 머물지 않는다. 양자컴퓨팅 기술은 상상을 현실로 바꾸며, 우리가 믿고 의지해온 보안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통신, 금융, 인증 시스템이 공개키 암호(Public Key Cryptography)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는 순간, 그 체계는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슈어 알고리즘(Shor's Algorithm)은 우리가 오랜 시간 믿어온 RSA, ECC 같은 암호 알고리즘을 손쉽게 깨뜨릴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양자 시대에도 우리의 데이터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은 무엇인가?”
2. 양자내성암호, 새로운 보안의 언어
양자내성암호(PQC, Post-Quantum Cryptography)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PQC는 양자컴퓨터로도 풀 수 없는 수학적 난제에 기반하여 설계된 암호 기술이다. 대표적인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다.
Kyber – 고속 키 교환을 위한 격자 기반 암호
Dilithium – 안정성과 속도를 겸비한 디지털 서명 알고리즘
SPHINCS+ – 해시 기반의 강력한 보안성 제공
Classic McEliece – 40년 넘게 살아남은 코드 기반 암호
이들 대부분은 미국 NIST가 주도하는 표준화 프로젝트에서 최종 표준 후보로 채택되었으며, 곧 세계 표준이 될 전망이다.
3. 블록체인도 변화를 요구받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탈중앙화’와 ‘신뢰’다. 그런데 그 신뢰의 근간은 바로 디지털 서명 알고리즘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ECDSA라는 서명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이는 양자컴퓨터에 매우 취약하다. 즉,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과거의 거래도 위조될 수 있고, 체인의 무결성이 무너지고, 스마트 계약과 NFT, DID 기반의 신뢰구조가 붕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이더리움, 하이퍼레저 등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양자내성암호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암호 방식(PQC + 기존 방식)도 주목받고 있으며, PQC 친화적인 신규 블록체인 아키텍처도 논의되고 있다.
4. 넘어야 할 기술적 허들
물론 PQC가 마법의 열쇠는 아니다. 현실에서 적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기술적 과제들이 존재한다.
키와 서명 크기 문제로는 기존보다 데이터 크기가 수 배 커져 전송과 저장에 부담이 되고, 호환성 문제는 레거시 시스템과 공존하기 위한 하이브리드 설계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공격 방식에 대한 방어로 부채널 공격(Side-channel attack)에 대비한 정교한 구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5. 우리는 언제, 어떻게 전환해야 할까?
PQC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세계 각국은 다음과 같은 로드맵을 바탕으로 보안 전환을 추진 중이다.
2025~2026: 하이브리드 암호 시스템 실험 도입
2027~2028: 주요 인프라의 PQC 적용 전환
2030 이전: 전체 시스템의 PQC 기반 완전 전환
특히 금융, 의료, 통신, 국방 분야는 선제적 대응이 필수다. 이는 단지 기술 전환이 아니라, 신뢰 체계의 리디자인이기 때문이다.
6. 마무리하며
“보안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양자컴퓨터는 분명 위협이지만, 양자내성암호는 그 위협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도구다. 우리는 지금 보안이라는 이름의 세계관을 다시 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양자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언어’로 신뢰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디지털 문명의 지속 가능성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 양자내성암호로 진화하고 있다.
<참고자료>
1) NIST Post-Quantum Cryptography Project, csrc.nist.gov
2) ETSI Quantum-Safe Cryptography Whitepaper
3) Ethereum Research: PQC in Blockchain
4) USENIX Security Symposium: A New Hope, SPHINCS+, Dilithium
<글쓴이 소개>
이정호 | 과학기술 칼럼니스트, ICT 정책 전문가
통신과 암호, 기술과 사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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