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이정호

최근 인공지능을 비롯한 거대한 기술들은 가히 폭발적인 속도와 압도적 규모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과거의 전문가는 결코 내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실감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3여 년 전 등장한 생성형 거대언어모델인 ChatGPT를 필두로, 수십 개가 넘는 AI 모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6G 시대를 대비한 통신 인프라의 구현, 양자컴퓨팅의 진전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님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로그 함수처럼 가파르게 변화하는 ICT 분야에서 1년 뒤 계획은 물론이고, 단 몇 개월 후도 확실히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전문가라는 명함을 내미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ICT 시장 속에서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하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선뜻 내놓기란 이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 많은 선배들의 조언을 구해도, '선경지명'이라는 멋진 단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앞다투어 집중 투자와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어제의 1등이 내일의 승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나 차분히 되짚어보면, 아무리 혁신적인 통신방식이나 알고리즘이 등장하더라도, 기본 물성적 기술의 틀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전파가 가진 고유의 주파수는 변할 수 없으며, 전파는 직진하고 반사하며 회절하고 굴절하고 산란한다는 본질도 바뀌지 않는다.


원자를 이루는 양자와 전자의 조합을 부정할 수 없으며, 전파가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는 원칙, 그리고 아무리 복잡한 전자회로라 해도 결국 반도체와 R, L, C 수동소자의 조합이라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놀라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물리계층의 기본 기술을 응용계층으로 발전시켜 다변화시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정보통신기술자가 설 자리는 분명히 존재하며, 오히려 더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응용은 기본 기술을 바탕으로만 가능하며, 이는 긴 시간 축적된 기술과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역사와 경험이 만들어낸 작품이지, 결코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현재의 기술은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과 기본기를 잘 승화시켜 지속적인 기반을 다진다면, 앞으로의 기술을 예견하고, 현재 기술에 대한 직관적 식견을 갖추며, 미래 기술의 패러다임을 그리는 데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기술을 더욱 깊이 관찰하고, 학습하여, 실제적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현대 과학과 공학은 과거의 기본 이론 위에 세워졌기에, 더욱 탄탄한 기술력의 바탕은 오랜 기간 정보통신기술에 몸담아온 여러분이 될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에 휘둘리는 대신 그 본질을 꿰뚫는 힘을 키워야 한다.


기술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춘 이들이, 다가오는 미래를 이끄는 진정한 전문가가 될 것이다. 단순한 기술 숙련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려는 깊은 시선이 필요한 시대다. 과거를 존중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 정보통신신문 링크 : [ICT광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정보통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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