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깊은 곳에서 예술과 철학이 시작되는 지점
오감은 본능이자 축복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감각이라는 정교한 수신기를 가지고 세상에 내려온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다섯 개의 감각은 단순히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도구를 넘어서, 삶의 본질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창구가 된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작동하던 이 오감은, 시간이 흐르며 예술과 철학, 공감과 사랑이라는 고차원적 감성으로 진화해 간다. 감각은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지점에서부터 삶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이다.
감각은 우리 안의 시인을 깨운다
한 번쯤은 가을 숲길을 거닐다가, 발끝에 밟히는 낙엽의 사각거림에 문득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는 단지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소리에 반응한 것이다. 청각은 자연의 언어를 번역하여 우리 내면의 정서를 깨우는 매개체가 된다.
눈을 감고 떠올려보자. 안개 낀 아침, 어렴풋한 빛 속에서 드러나는 단풍잎의 붉은 결. 시각은 자연의 색채를 해석하며 인간의 감성을 조율한다. 자연의 색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詩)이며, 눈은 그 시를 읽는 독자가 된다.
비 오는 날의 냄새, ‘흙비 냄새’라고 불리는 그 특유의 향기는 후각을 통해 기억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장화 신고 논두렁을 뛰어다니던 장면이, 문득 그 냄새 하나로 되살아난다. 감각은 기억의 창고이기도 하다.
한 모금의 따뜻한 차, 혹은 막 구운 빵의 고소한 맛은 미각을 넘어 삶의 위안을 전한다. 바쁜 일상 속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미각을 통해 삶의 ‘느림’을 배운다.
또한, 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체온, 가벼운 바람이 팔을 스치며 전하는 따스함. 촉각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가장 원초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감각이다. 이처럼 오감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함을 확인하고, 세상과 깊이 연결되게 하는 다리이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때론 하나의 그림이 되며, 때론 한 줄의 시가 되기도 하고, 고요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칸딘스키는 색채에서 음악을 느꼈고, 롤랑 바르트는 ‘촉감의 언어’로 문학을 해석했다. 결국 예술과 철학의 씨앗은, 바로 이 오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감각은 존재의 문을 여는 첫 단추다
이처럼 인간은 감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그 소통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구성해 간다. 예술은 감각이 빚어낸 언어이며, 철학은 감각을 통해 시작된 질문에 대한 깊은 응답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그 아름다움은 오감이라는 통로를 통해 발견된다. 그리고 그 발견은 삶을 더욱 섬세하게, 의미 있게 만든다.
오감의 여정, 존재의 이유를 찾아가는 길
결국 인간은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감각을 통해 ‘왜 살아가는가’를 묻고, 그 질문에 아름답고 고귀한 방식으로 답하려는 존재다. 귀로 듣는 바람, 눈으로 보는 빛, 손끝으로 느끼는 온기. 그 모든 순간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조금씩 밝혀준다.
오감은 외부 세계를 향한 창이자, 동시에 내면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만지고, 그 만짐 속에서 스스로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를 예술가로, 사유하는 존재로,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