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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룬다는 것의 의미

by 이정호

내일로 미루었다.

오늘 하지 않으면, 오늘 만나지 않으면, 오늘 가지 않으면-


나는 ‘지금(Now)’과 ‘여기(Here)’를 수없이 되뇌며, 만나는 사람마다 마치 주문처럼 되풀이했다.

그런 내가 왜 내일로 미루었을까? 내일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 있을 것 같았지만, 내일도, 모레도, 그 후도 있었고, 내달도, 내년도 있었다.


모두가 빛보다 빠른 삶을 원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간다. 로켓 배송, 번개처럼, 빛의 속도로-

늘 속도와의 전쟁을 치르며 사색과 여유는 멀어져 갔다.


공백, 한가함을 사치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여유는 무능력처럼 느껴진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가 없음을 누구나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미룸은 게으름과 혼돈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찾는 행위일 수 있다. 이미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법한 현실 속에서도, 나는 또 내일을 택했다.


이 문장은 철학적 사색과 깊이 있는 여유를 되찾는 시간의 재발견이다. 내일 하면 되지 않을 일도, 곰곰이 따져 보면 별로 없었다. 조급함이 갈급함을 앞질렀고, 정작 중요한 일들을 외면하게 했다.


미룸은 더 좋은 일들과 마주쳤고, 잔잔함과 공간, 색의 농도마저 더 선명하게, 더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미루는 것은 결코 헛된 행위가 아니다.


느림은 느린 행위가 아니라, 천천히 호흡하는 연습이다.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다음 달로 미루기로 했다.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암 병동의 침상에 누워 깊은 상념에 빠진 환자는 말한다.

죽음을 미루는 것만큼 소중한 일은 다시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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