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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속도이고, 문학은 여유이다

by 이정호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기술의 파도에 휩쓸린다. 스마트폰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업데이트된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속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문학은 어떠한가. 종이책의 질감, 한 줄의 문장을 곱씹는 시간, 혹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 한 편을 읊는 여유.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 내면의 깊이와 여백을 담아내는 존재이다. 기술과 문학,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시간의 속도를 지닌 채 우리 삶의 양 극단을 구성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두 가지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삶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과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 혁명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접하고, 클릭 한 번으로 수백만 개의 정보를 얻는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앱 업데이트나, 순식간에 유행하고 사라지는 디지털 트렌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속도에 대한 강박을 느끼기도 한다. 메신저 앱의 읽음 표시가 사라지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맛집을 검색해 놓고 배달이 30분만 늦어져도 조급해진다. 이러한 기술의 속도감은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준다. 기술은 우리에게 '더 빨리'를 외치며 쉴 틈 없는 삶의 리듬을 강요한다.


이러한 기술의 속도감 속에서, 문학은 여전히 느림의 미학을 지키고 있다. 문학은 기술처럼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결을 더듬게 한다. 문학의 여유는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책 한 권을 천천히 음미하는 순간에서 온다. 혹은 바쁜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 한 편을 읽으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이 어떻게 올까, 어떻게 올지 모른 채...'와 같은 시 구절이 던지는 질문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며 사색의 기회를 준다.


또한, 수십 년 전에 쓰인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기쁨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는 경험은 기술이 주는 즉각적인 만족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따뜻함과 깊이를 선사한다. 문학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라고 속삭이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결국 인간은 기술의 속도와 문학의 여유로움 사이에서 피어나는 존재이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속도에만 매몰될 때, 우리는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고 공허함을 느낄 수 있다.


인간 본연의 방향성은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여유에 있다. 기술이 삶의 외적인 성장을 돕는다면, 문학은 삶의 내적인 성장을 돕는다. 이 두 가지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진정으로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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