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등한시하였던 아버지를 뵙고, 업무도 볼 겸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았다. 주목적은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으며 작디작은 집이지만 이틀 밤을 그저 아버지와 함께 지내기로 한 것이다.
미리 전화를 드리고 찾아뵈니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청소까지 다 해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싱싱한 회와 소주 한잔에 그동안의 시름은 눈 녹듯이 녹아버리고 부자의 정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로 이어간다.
몇 년 전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홀로 소형 아파트에 모셔져 지금은 수년째 혼자 지내는 것에 적응이 되어 나름 홀로서기를 터득하신 편이다. 아들인 나도 환갑을 지났지만 수도권에 있고 아직도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다음날 아버지가 출근하다시피 꼭 다니신다는 산 중턱의 놀이터에 가보기로 하였다. 아들이 왔으니 나름 괜찮은 선물이나 들고 가야기에 고기며 여러 가지 먹거리를 사가자고 제안했으나 아버지는 극구 손사래를 치시며 그저 큰 페트병에 담긴 소주나 2통 사가자고 하신다. 그리고는 손수 따서 말리신 감 몇 알과 배낭을 꾸리기 시작하셨다.
하는 수 없이 하시자는 대로 짐을 꾸려 산행에 나섰다. 어르신들이 모이시는 곳은 집과 꽤 떨어진 곳으로 가파른 언덕도 있고 거리도 제법 있어 아버지가 매일 다니시기에는 참 좋은 장소로 보였다. 급격한 도시화로 산 어귀까지 아파트의 공세가 이어졌지만 산에 들어서니 시냇물도 졸졸 흐르고 정자 같은 평상도 보인다. 아버지 나이 정도의 많은 어르신들이 이미 와 계셨고 아버지는 자랑스럽다는 듯 “우리 아들인데 여기 한 번 와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습니더” 하면서 일일이 인사를 시키신다. 옷차림이나 외부로 나타나는 모습이 거의 아버지와 비슷해 보인다.
자연이 만들어준 제법 역사가 깊은 ‘용골 쉼터숲’은 그렇게 많은 분들이 쏟아낸 사연들로 가득하였다. 그래도 시와 구청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셨고 어르신들이 유일하게 소일할 수 있는 장소이고 보면 참으로 귀하고 값진 곳으로 보였다.
급격한 노령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복지정책과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었고, 우리 대한민국을 견인한 원동력이자 핵심 노동력을 바탕으로 평생 일해 오셨지만 그에 대한 뒤안길은 참으로 초라하였다.
아버지는 특히 몸이 아주 건강하셔서 예전엔 장고리(장골‘壯骨’의 경상도식 사투리로 기골이 크고 무척 힘이 센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불렸었지만 팔순의 중반에 들어서니 그 건장하신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깊게 파인 주름과 노쇄하여 가는 모습에서 향후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셨다.
누구나 태어나면 성장기를 거쳐 장년이 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 결국 노인이 된다. 이것처럼 확실한 진리가 없는데도 모든 정책과 현실은 중장년층에 맞춰져 돌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키오스크와 앱을 사용하지 못하면,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생활하기 어려운 현재의 사회구조는 노인들을 더욱 외롭게, 소외감을 더 느끼게 하는 도구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아버지와 2박 3일의 짧은 동거를 마치고 KTX 열차에 몸을 실으니 노인이 노인을 모셔야 하는 현실과 급격한 노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을 몸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현상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막화되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치원이 요양원으로 탈바꿈하고 본인이 아예 며느리와 사시는 것을 거부하는 현재의 상황은 편리함과 합리적이라는 단어 속에 가려져 당연시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밤중에 시골길을 전조등도 켜지 않고 달리면서 뒷 창문으로 밖을 보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통계와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한 노인문제에 대해서는 현시대를 떠나 많은 학자들과 정부가 앞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야 한다. 노령화, 인구감소, 거시경제의 동반추락, 기후변화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는 없다. 그러나 호롱불 밑도 살펴야 하며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가 한 말처럼 “오류로 가는 길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진실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현 사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이 또한 크나큰 오류이며 자기중심적 사고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고 오늘도 하루를 앞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인정하지 않는 한 노인 문제는 결코 해결되기 어렵다. 이 계절이 가기 전 다시 한번 아버지를 찾아야겠다. 그땐 뭐라고 하시든 고기와 어르신들이 좋아하실만한 음식들을 한 아름 안고 아버지의 놀이터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