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남의 자리는 언제나 비슷하다. 손은 주머니를 더듬고, 가방을 열고, 명함 지갑을 찾는다.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우리는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든다.
그 종이 위에는 이름보다 굵은 글씨로 회사가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직위가 자리 잡고 있다.
고개를 숙여 명함을 받는 순간, 눈은 얼굴이 아니라 활자 위를 훑는다. 눈빛은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직함은 벌써 읽혀버린다.
참 묘한 장면이다.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은 나중이고,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이 먼저다. 목소리의 떨림도, 악수의 온기도, 표정의 미묘한 변화도 느끼기 전에,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분류해 버린다.
대기업. 공기업. 스타트업.
대표. 이사. 팀장. 사원.
모자의 높이와 넓이로 인간의 크기를 재는 습관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왜 우리는 얼굴보다 모자를 먼저 보는 걸까.
어쩌면 두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눈을 마주치면, 그 사람의 상처가 보인다. 불안이 보인다. 감춰둔 외로움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의 상처를, 나의 불안을, 나의 외로움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것을 택한다. 직함을. 회사를. 숫자를. 스펙을.
명함 위의 정보는 명확하다. 객관적이다. 해석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람이 '무엇'인지는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모른 채로 헤어진다.
모자는 우리를 보호한다. 동시에 우리를 숨긴다.
직함이라는 모자를 쓰면, 우리는 당당해진다. 말에 무게가 실린다. 상대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러나 그 모자를 벗으면,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한 사람일 뿐이다.
어느 순간 문득 질문이 찾아온다.
회사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나는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직위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많은 이들이 잠시 침묵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평등을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서열을 만든다.
"아, ○○회사 부장님이시군요."
"아, 교수님이시군요.“
그 한마디로 관계의 높낮이가 결정된다. 말투가 달라지고, 시선의 각도가 달라진다.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명함 속 회사의 크기를 더 크게 본다. 사람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매번 비교표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비교표 안에서, 우리는 점점 지쳐간다.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나인가, 내가 속한 조직인가.
나는 내 이름인가, 아니면 내 직함인가.
어느 날, 모든 모자를 벗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실패라는 이름으로, 혹은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그때 우리는 깨닫는다.
그동안 내가 지켜왔다고 믿었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었다는 것을. 회사라는 간판, 직위라는 상징, 성과라는 숫자.
그것들은 나의 일부였을지 모르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더 높은 모자를 쓰려한다.
더 반짝이는 모자. 더 두꺼운 모자. 더 권위 있어 보이는 모자.
모자가 커질수록, 우리의 진짜 얼굴은 점점 보이지 않는다. 모자가 무거워질수록, 고개는 쉽게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게 속에서, 우리는 점점 가면을 쓰듯 살아간다.
웃어야 할 때는 웃고, 강해 보여야 할 때 강한 척하며, 약함을 숨긴다. 진짜 나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진짜 나를 잊어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직함으로는 위로받을 수 없다는 것을.
회사 이름으로는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홀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명함 위의 글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눈빛, 아무 조건 없이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다.
우리가 진짜로 기억하는 사람은, 높은 모자를 쓴 사람이 아니라 눈을 따뜻하게 마주해 준 사람이다.
직위가 아니라, 말 한마디의 진심이 오래 남는다.
모자를 벗고 마주 선 사람은 다르다.
그 눈빛에는 계산이 없다. 서열도 없다. 오로지 한 인간으로서의 떨림과 숨결만 있다.
그때 비로소 관계는 깊어진다. 얇은 종이처럼 스쳐 지나가지 않고, 마음의 결에 오래 남는다.
혹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모자만 바라보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 누군가를 만날 때, 명함을 받기 전에 잠시 눈을 바라볼 수 있을까. 직함을 읽기 전에, 먼저 이름을 불러볼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다.
지금 나는, 어떤 모자를 쓰고 있는가.
그 모자가 없어진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는가.
당신은 오늘,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모자를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