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온 세상이 산다

종교의 차이를 넘어, 인간다움을 향하여

by 이정호

1. 식탁에 모인 네 가지 빛


저녁 무렵, 한 가정의 식탁을 상상해 보자. 아버지는 오늘도 절에 다녀왔는지 손목에 염주를 걸고 있다. 어머니는 성당 미사 책자를 가방에서 꺼내 선반에 올려둔다. 아들은 교회 청년부 모임에서 나누어 준 성경 구절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채 밥상에 앉고, 딸은 오늘 저녁 기도 시간에 맞추어 조용히 방향을 확인한다.


이 집안에는 부처의 자비가 있고, 성모 마리아의 은총이 있으며, 예수의 사랑이 있고, 알라의 뜻을 따르는 신실함이 있다. 네 개의 신앙이 한 식탁 위에 모여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가족은 오늘도 싸우지 않는다.


밥 한 숟갈을 뜨며 아버지가 웃고, 어머니가 국을 더 떠주고, 아들이 형광등을 켜주고, 딸이 조용히 감사 기도를 올린다. 서로의 믿음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가족은 오늘 저녁도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눈다.


이것이 진짜 기적이 아닐까. 물 위를 걷는 것도, 산을 옮기는 것도 아닌, 서로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이 한 밥상 앞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그 조용한 기적 말이다.


2. 성인들은 칼을 들라 하지 않았다


부처는 연꽃 위에 앉아 고통의 근원을 가르쳤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는 것이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 기도 속에는 복수가 없었고, 오직 용서와 평화가 있었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밀라 했다. 마호메트는 이웃을 먹이지 않는 자는 참된 신앙인이 아니라 했다. 어느 성인도 타 종교인의 피를 땅에 뿌리라 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자는 차이를 보고 싸우지만, 지혜로운 자는 차이 속에서 배움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성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그들이 단 한 번도 가르치지 않은 증오의 길을 걷는가. 성인들의 가르침은 살아있는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그들이 말한 사랑과 자비는 경전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이웃을 대하는 태도 속에 살아 숨 쉬어야 한다.


3. 나무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메타세쿼이아는 수백 년을 산다. 은행나무는 천 년을 넘기도 한다. 바다거북은 파도가 높아도, 폭풍이 몰아쳐도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가뭄이 와도, 홍수가 와도,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서도 그 자리를 지킨다.


나무는 옆 나무의 뿌리가 자신의 땅으로 파고든다고 해서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뿌리가 엉키며 더 깊이 땅을 잡는다. 그 고요한 공존이 수백 년의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천 년을 사는 나무 앞에서, 폭풍을 이겨내는 거북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영장인가.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신념 하나에 칼을 드는 존재가 만물의 으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불평 없이 제자리를 지키라고. 차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차이 속에서 뿌리를 내리라고.


4. 짧은 생, 긴 사랑


인간의 몸은 아무리 강건해도 150년을 넘기기 어렵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한 줌의 불꽃과도 같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태어나고,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또 세상을 떠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몸은 땅으로, 물로, 바람으로 돌아간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는 그 몸을 위해 우리는 3일 동안 온 친지를 모으고, 좋은 자리를 고르고, 어디에 뼛가루를 뿌릴지를 놓고 다툰다. 그 짧은 생의 끝에서조차 우리는 아직 다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는 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서로의 신을 향해 무릎 꿇는 그 진지한 표정을, 나의 신앙과 다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


"나는 나의 길로 신에게 가고, 당신은 당신의 길로 신에게 간다. 길이 다를 뿐, 우리는 같은 진실을 향해 걷고 있다.“


5. 민주주의의 꽃은 인정(認定)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와 법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태도다. 자유는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권리이며, 동시에 당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도록 내버려 두는 책임이다. 평등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등하게 존엄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민주 시민이 되는 길은, 투표장에 가는 것만이 아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다른 신을 섬기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더라도, 다른 색깔의 삶을 살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언어폭력은 주먹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혀끝에서 나온 경멸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신앙을, 한 사람의 존엄을, 한 사람의 생애를 짓밟을 수 있다. 그 무게를 알고 말해야 한다.


6.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있다


다시 저녁 식탁으로 돌아가 보자. 염주를 건 아버지, 성모 묵주를 만지는 어머니, 성경 구절을 떠올리는 아들, 조용히 기도하는 딸. 이 가족은 오늘도 서로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그들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이 더 옳다고 외치지 않는다. 다만 사랑한다. 다만 곁에 있다. 다만 밥 한 끼를 나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성인들이 침묵 속에서 전한 가르침이다. 말이 아닌 삶으로, 경전이 아닌 일상으로, 교리가 아닌 온기로 전해지는 그 가르침. 사랑하라. 인정하라. 더불어 살아라.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 태어나 같은 땅 위에서 살다가 같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 짧은 여정 동안, 제발 서로의 손을 잡자.


오늘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실된 하루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