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남긴 여운
- 이 정 호 -
세상에 한 차례 매를 맞은 석양이
산 너머로 뉘엿뉘엿 물러가고,
어디선가 기약 없이 솟아오를 내일의 태양은
지구의 어깻길을 따라 묵묵히 공전한다
달아나 버린 가을의 뒷모습은 이미 아득하고
한기가 밀려드는 틈에
달력 한 장이 바스락 소리 내며 넘겨진다
슬금슬금 스며드는 나이의 무게는
철을 잊어가고,
그리워하던 계절의 숨결도 메마르게 식어간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어둑해진 땅거미 속에서
새들은 허공을 박차 오르며 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글, 사진 : 이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