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의 물리학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하여

by 여자 말러리안

오케스트라 공연 시작 전, 고요한 적막 속 오보에 주자가 일어나 ‘라(A) ’음을 불기 시작하면 다른 악기들이 차례대로 그 음에 자신의 피치를 맞춘다. 오케스트라에서 튜닝은 단순히 음을 맞추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세계를 합치겠다는 거대한 합의다. 보통 한국의 오케스트라는 442Hz를 기준으로 삼지만, 어떤 곳은 440Hz를 고집하기도 한다. 고작 2Hz의 차이. 귀가 아주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힘든 미세한 차이이다. 하지만 440Hz로 조율된 악기와 442Hz로 조율된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내는 순간, 두 음은 화합하는 대신 묘하게 거슬리며 서로를 밀어낸다. 이 거북함은 어느 한쪽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어느 순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혹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던 영상들이 더 이상 취향에 맞지 않아 불쾌하게 느껴질 때. 이는 우리의 내면의 주파수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440Hz도 442Hz도 각자의 세계 안에서는 완벽하게 ‘옳다’는 점이다. 단지 각자가 선택한 주파수가 달라졌을 뿐이다. 인간은 경험과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조율하는 존재이며 그 과정에서 여전히 예전 주파수에 머물러 있는 관계나 취향들과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즉 각자의 피치는 여전히 '옳지만', 우리가 같은 무대 위에서 같은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합의'의 상태는 이미 종료된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조율이 맞지 않을 때 연주를 시작할 수 없듯, 우리에게도 잠시 무대 뒤로 물러날 결단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악기가 반드시 한 무대에 설 필요는 없다. 관계나 취향의 균열을 성격이나 도덕의 문제로 치환하며 괴로워하기보다, 이제는 각자의 피치가 완벽하게 구현될 수 있는, 서로 다른 무대에 오를 채비를 하면 될 뿐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