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키우는 여자

by 오이향

고양이를 키운다.

내가 생명체를 실제 키워 본 건 초등학교 때 병아리 다섯 마리가 전부다. 물론 지금 키우는 고양이는 각종 광고를 일정 시간 보고 대가로 얻은 사료와 에너지로 키우는 사이버 동물이다. 나는 운영자가 바라는 광고의 유혹을 비웃는다.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사람임을 증명이나 하듯 눈을 감고 광고를 본다. 그래서 고양이 사료와 에너지는 매일 눈물겹게 미미하다. 실제든 가상이든 생명체를 키우는 일은 이렇듯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리.

그렇게 순수 나의 시간과 노력으로 키워 얼마 전 2,500원 상당의 햄버거 교환권을 받았다.

야호.

문제는 보관함에 두고 기쁨을 만끽하기엔 유효기간이 너무짧다. 거기다 해당 햄버거 매장은 많지도 않다.

젠장.

뻔한 상술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지뢰밭 같던 광고에 눈 감고 귀 닫고 키워 온 세월이었다. 마지막까지 주의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마침 유효기간 마지막 날이 건강검진일이라 오전에 검진을 마치면 조금 멀지만 그 매장을 찾아가리라.


유난히도 무덥던 그날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검진을 마치면 도서관에 들러 책도 반납하고, 기력을 회복해 다시 햄버거를 교환해서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우선 도서관 가는 버스를 탔다. 타고나니 기사님이 고함친다.

“손님!, 왼쪽 편에는 에어컨이 고장 났어요. 오른쪽에 앉으시던지, 다른 차를 타시던지요.”

그럼 교통카드 찍기 전에 말을 하시던지요...... 말을 삼켰다. 버스 안에는 나와 그, 단 둘이다. 그래선지 자꾸 내게 말을 건다. 그것도 차 안이 떠나갈 정도의 큰 소리다.

“손님!, 그쪽에 에어컨 안 나와요. 오른쪽에 앉으라니깐요?” 이것은 친절인가 성질인가! 안 옮기면 잡아먹을 기세다. 그쪽은 살인적인 햇빛이 더 무섭게 내리쬐는 데 어쩌라고..... 또 말을 삼켰다.

시킨 대로 했다. 무서워서. 어쩐지 그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더위와 허기로 쓰러질 지경이다. 도서관 근처 매점에서 꼬마김밥 다섯 줄을 사서 벤치에 앉았다. 어쩐지 좀 눈물겹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햄버거 집을 검색했다. 그래도 인터넷은 참 편리하다. 좀 멀리 돌아가지만 여러 번 갈아타는 법과 다른 방향으로 가지만 짧게 한 번에 가는 법을 비교해 제시했다. 시간은 얼추 비슷하지만 오늘의 피로도를 감안해서 되도록 갈아타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퇴근 시간을 감안해 조금 빠른 출발을 하는 내 현명함이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길 찾기 앱에서 제안한 버스는 좀체 오지 않았다. 요즘에 전광판 없는 버스정류장이라니, 처음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으로 버스 앱을 실행해서 실시간 도착 시간을 체크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대기시간인 점점 불어나는 신기를 보였다.

처음 제시한 대기 22분에 놀라기도 했지만, 기다린 것이 아까워서 더 기다린 시간이 15분 더해져 37분을 한자리에 서 있었다. 그 인고의 시간 동안 깨달은 게 있다면 이 버스는 강 넘어 강서지역과 도심을 오가는 조금 특별한 우등버스였다는 사실이다. 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이버 고양이를 독하게 키워 공짜로 얻은 2,500원짜리 햄버거를 받으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과 연결만 하지 않는다면.....


무사히 햄버거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 앱 실행을 무한 반복한 탓인지 핸드폰 배터리가 3% 남았다. 사정도 모르는 가게 예쁜 언니는 나를 키오스크로 안내했다.

그사이 2%,

드디어 핸드폰 액정이 어둑해지고 교환권이 인식되지 않았다. 다시 그 언니에게로 가서 나는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끌어 모아 내뱉었다.

“핸드폰 충전 잠깐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집으로 오는 길은 다행히 방향이 맞는 마을버스가 있었다. 타고 보니 버스는 오롯이 방향만 맞을 뿐이었다. 우리 집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을 찾겠다는 듯 온 동네를 구석구석 두루 돌아다니다가 내렸다. 그럼 그렇지. 집에 도착했더니 언니랑 조카부부가 있었다. 2,500원짜리 햄버거는 정확하게 4조각으로 나눠졌다.

맛있긴 했다.

과연 나는 오늘 한 거지?


인생은 뭐 그런 거 아닌가? 다음 번은 더 나을 거라는 기대로 그냥 하던 일을 무던히 해내는 것. 지금 나는 아이스크림을 목표로 다시 고양이를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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