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어머니!

나는 안녕합니다.

by 오이향

아직도 문을 열고 큰방으로 들어서면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신다. 13년 전 쓰던 영정사진이 나름 추모공간이라 이름 붙인 책상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가시고 더 이상 그 방문으로 나오시지 않게 되자 나는 혼자 상상하곤 했다. 방문 안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가 마치 거대한 열차처럼 스쳐 지나고 어머니는 그 열차로 갈아타고 가신 건 아닐까? 커다란 두 개의 세계가 부딪히면서 어머니는 다른 세계로 옮겨 타신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즐겨 봤던 만화 '은하철도 999'처럼 은하를 유영하며 멀어지는 열차를 상상한다. 이제 그 일도 13년이 지났으니 제법 두 세계는 멀어지고 어딘가로 먼 여행을 하고 계실 것이다.


나는 큰 딸 밑으로 아들을 기다리던 집안에 눈치 없이 둘째 딸로 찾아왔다. 그것도 1년 전 사산한 아들을 본 부모였기에 더욱 그렇다. 예상컨대 생존초기에는 집안 전반에 퍼진 뭔지 모를 실망의 무게감과 적당한 무관심을 받으며 자랐으리라. 그럼에도 타고난 낙천성과 살짝 눈치 없음으로 잘 먹고 잘 잤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눈물겹게 길러진 후천적 성향일지도 모른다. 증언에 의하면 눕히면 자고, 앉히면 먹고, 딱히 옹알이도, 딱히 울지도, 잘 아프지도 않았다 한다. 납작한 뒤통수와 오래오래 내 몸 구석구석 붙은 살집들이 화석처럼 남아 증언을 뒷받침한다.

그렇게 내 위치를 스스로 자각한 탓인지 나는 입댈 것도 없이 무럭무럭 잘 자랐다. 3년 후 막내아들을 얻기도 했거니와 살아남기 위한 나의 이 빛나는 처세술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체제 순응적인 체력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어엿한 1남 2녀의 차녀로 자리매김하면서 성장했다.


여기서 참고로 말하면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라 불렀다. 엄마라고 부르지 않음을 친구들은 기이히 여기기도 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머니도 그리하라 시킨 적 없다지만 지금으로선 확인할 바가 없다. 언니가 그렇게 불렀고, 나도 따라 불렀으며, 남동생도 "어머니"라 불렀다.


나의 대학시절, 지금은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컴퓨터에 생일을 넣으면 사주를 볼 수 있는 게 신기했던 때가 있었다. 컴퓨터가 지금의 챗GPT처럼 제 기능을 알리기 시작할 때였다. 나도 문명의 혜택을 한번 보나하고 내 생일을 넣었더니 음력과 양력생일이 일치하지 않았다. 둘 중 하나는 틀렸다는 뜻이다.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동안 지내오던 내 생일이 진짜 생일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아버지 생일보다 일찍 들면 생일밥을 못 챙겨 먹는다는 논리로 어머니가 대충 때려잡은 날이 20일이었다. 집요한 추궁 끝에 10월 어느 공휴일이 내 생일이었다는 답을 끌어냈다. 10월에 많은 휴일들 중에 아마도 한글날이었을 것이라는 한마디에 나는 그 해부터 10월 9일이 내 생일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민등록생일은 그다음 해 2월, 출생신고는 5월에 했다는 사실을 문서로 추가해서 알게 되었다. 늦은 출생신고였지만 그나마 2월로 당겨 올린 것은 친구들이랑 학교는 같이 가야지 하는 애틋한 마음이었다고 고백하셨다. 그렇게 내 출생에 얽힌 전모가 드러났다.


어머니는 어딘가 어설픈 여권운동가셨다. 성장기 내 일상 구석구석에서 나에게 조용히 주문하곤 했다. "여자라고 못 할 일 없다. 뭐든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라."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않은 현실을 아직 자각하지 못한 때였다.

내가 막 뒤끝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언니랑 남동생의 양력생일이 주민등록생일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보면 나의 탄생이 그만큼 환영받지 못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우량아로 커 갔던 나는 무려 8개월 동안이나 세상에 미등록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물론 8년도 아니고 당시로는 허다하게 일어나던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 남매들을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절대 뒤끝은 아니다.

내 행동방식의 뿌리는 '양성평등'을 성장기 내내 플러팅 하시던 내 어머니로부터였다. 생각하고 행동하고 보고 보이는 나를 온전히 길러내셨던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게 하셨던 어머니, "혹시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어서 나를 그냥 막 윗목에 밀어 두고 관심 없으셨던 건 아니시죠?" 지금에 와서야 상상만 할 뿐이다.


그 후 출생일을 넣고 재미 삼아 사주풀이를 할 때면 신기하긴 했다. 성향이랑 성격을 얼추 비슷하게 맞춘다. 순전히 어머니의 기억에만 20년 넘게 저장되었던 그날이 어쩌면 정확한 날이었던가? 아니면 그날이라고 믿어 오는 동안 성격도 사주와 맞춰지는 걸까?


이미 다른 세계로 기차를 갈아타고 가신 어머니, 처음 도시락을 싸갔던 날,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다 먹은 도시락에 붙어 온 밥풀 몇 알에 따끔하게 혼을 내셨던 기억이 난다.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며 지나치게 독립적인 나로 키우셨던 어머니,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음식을 잘 못 남기는 사람이라 체중관리가 너무 어렵다고, 독립적이어도 너무나 독립적인 나로 살면서 때로는 어딘가 기대고 어딘가 숨어 들어가고 싶은 때도 있다고 넋두리해 본다.


지금쯤 너무 멀리가 계실 테지만 생일까지 고쳐가며 나의 안녕한 삶을 기원했던 어머니,

"나는 과연 기대대로 잘 가고 있습니까?"